대표적 독소조항인 '고의·중과실 추정' 성립요건, 오히려 완화시켜 징벌적 손배 넓혀
'언론자유 위축' 우려한 국제단체에 송영길 당대표 "뭣도 모르니까" 발언해 물의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유력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재차 문구를 변경하면서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그동안 국회 소관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를 통해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면서 주요 조항마다 '위헌'이라는 반발이 나오자 면피성 수정을 거듭해온 민주당이지만, 이번 수정은 사안이 다르다.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제 30조의 2(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에서 '고의·중과실 추정' 성립요건을 완화시켜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을 오히려 넓혔다.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에서 당초 문체위 개정안은 "①법원은 언론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였지만, 법사위 민주당 의원들은 여기서 '명백한'을 삭제했다.

'고의 또는 중과실이 명백하여야 한다'는 기존 조건이 훨씬 더 포괄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법률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법사위 심사에서 "피해자가 고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명백한이라는 표현을 넣으면 피해자가 제대로 구제되겠느냐는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 민주당 소속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가 8월 25일 새벽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사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손 본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라는 항목에서 '피해를 가중시키는'을 삭제했다. 피해 여하와 상관없이 손해배상의 성립요건을 완화시킨 것이다. 이는 소병철 의원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에 따랐다.

기존 개정안에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라는 문구도 있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해당 조항 전체를 삭제했다.

또한 당초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규정으로 넣었던 "공적 관심사와 관련된 사항으로 언론의 사회적 책임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언론보도" 문구까지 법사위 민주당 의원들이 삭제하자고 나섰다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반대 의견을 내서 철회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에 대해 관련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언론계·법조계·해외언론계까지 나서서 전부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야당이 빠진 채 진행된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법안은 오히려 더 독해졌다.

언론 자유의 위축을 우려한 국제기자연맹(IFJ)이 법안 폐지를 촉구하자, 이에 대해 송영길 당대표는 25일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그들이)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아나. 뭣도 모르니까 뭐든지 그러지 않느냐. 우리도 언론단체에서 쓰면 그것을 인용하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더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법조계 일각은 법사위에서 민주당이 추가로 수정한 법 개정안이 사실상 언론을 더 옭아맬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부장판사는 26일 본보 취재에 "법사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일부 논란이 된 조항을 삭제했으나 고의 및 중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모호한 것 그대로일 뿐더러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개념 정의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헌 소지가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도 그대로"라면서 "법사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새벽 심사를 강행하면서, 체계 및 자구 수정과 위헌성을 제대로 심사해야 하는데 이를 똑바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명백한'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도 치명적이다"라며 "고의 중과실 추정 범위를 확대해 결과적으로 자의적인 해석 가능성을 비롯해 형사처벌 가능성을 높였다"고 우려했다.

언론중재법은 30일 본회의 처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 당장 시행되는 건 아니지만 언론환경은 이에 맞춰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