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C, 미중 무역 갈등·팬데믹 등 여파로 해체·약화
업계, 세계 각국 정부 안정적 밸류 체인 구축 전망
무역-안보 연계…환경 연계 종합 전략 수립 필요"
[미디어펜=박규빈 기자]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장기화 됨에 따라 부품 수급이 어려워 제품 출하를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은 더욱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과 관련 업계의 경영 전략에 정무적 감각이 요구된다.

   
▲ 애플 명동 매장이 방문객들로 붐빈다./사진=연합뉴스

15일 전기·전자 업계에 따르면 대만 페가트론은 중국 상하이·쿤산 내 애플 아이폰 제조를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탓에 현지 정부가 고강도 방역 규제를 적용하고 있어서다. 공장 재가동 시기는 미정이다.

홍하이정밀공업 산하 폭스콘이 페가트론 생산분을 메울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봉쇄 기간은 장기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애플의 제품 출하 계획도 일정 부분 틀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이폰 뿐만 아니라 맥북 생산 물량 20% 가량을 맡은 콴타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 회사가 상하이 공장을 잠정 폐쇄함에 따라 궈밍치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M1 프로·M1 맥스 칩셋을 탑재한 14·16인치 맥북 프로는 다음달 말이나 6월 초 쯤 수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량 부족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계도 고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신차 출고 대기 기간 6개월은 예삿일이 됐고, 심지어 '군대 가기 전에 계약하고 전역 후 받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특히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이나 차량용 전력 반도체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르네사스 일본 공장은 지진 발생을 이유로 공장 가동을 멈췄고, 우크라이나 사태도 공급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전경./사진=한국무역협회 제공

무역업계는 2011년 이후 성장이 정체된 글로벌 밸류 체인(GVC)이 4차 산업 혁명과 미·중 갈등, 팬데믹 등의 여파로 해체 또는 약화됐다고 평가한다. 

보호 무역주의는 더욱 심화됐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수입 의존도를 낮춰 자국 내 제조업 내재화로 이어졌다. 이는 곧 글로벌 밸류 체인보다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 강화를 초래했다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과거 10년 간 글로벌 밸류 체인은 정체된 반면 역내 무역은 확대돼 생산 공급망이 지역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 역내 무역 비중은 2012년을 기점으로 상승세로 전환돼 2012년 50%에서 2020년 53.4%로 3.4%p 상승했다.

각국 경제 정책도 '뉴노멀'을 맞아 글로벌 밸류 체인 패러다임이 '경쟁적 보호 무역주의 시대'
이전으로 회귀하기는 어려워 '안정적 밸류 체인'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핵심 공급망 역할을 담당했던 중국 중심의 밸류 체인은 자국 내 산업 고도화 정책과 미국과의 무역 분쟁 등의 요인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처럼 현재는 △보호 무역주의 △미-중 무역 분쟁 △자국 공급망 강화 △리쇼어링 등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축의 전환기'인 만큼 한국 기업들은 생산 기지 이전 등 전략적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요소수를 생산하는 롯데정밀화학 공장 전경. /사진=롯데정밀화학 제공

과거에는 공급망 이슈가 주로 완제품 생산을 위한 소재‧부품 조달에 국한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요소수 대란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범용 제품까지 수급 문제가 생김에 따라 공급망 리스크에 대한 경각심은 산업 전 분야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으로 원유·천연 가스 등 에너지와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무역 위기는 기업 경영 외 국가 경제·안보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미국 등 주요국은 공급망 위기 대응 차원에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반도체·배터리 등 미래 핵심 전략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 관련 업계 육성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급망 내재화·공급처 다변화·재고 및 예비 생산 능력 확보 등을 통해 공급망 회복 탄력성·안정성을 제고하는 것이 각국 경제 유관 부처의 핵심 정책 목표로 떠올랐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일수록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 비용 증가가 수출 파급효과의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범 정부적 차원에서의 체계적 공급망 관리 등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수출과 경제와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국내 경제로 귀속되는 수출의 부수적 효과를 극대화 하고, 기술 수준에 따라 비교 우위를 지키거나 R&D를 통해 부가 가치를 끌어올리는 맞춤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무역과 안보가 연계되는 추세인 만큼 미국·EU 등 서방 중심의 동맹 국가와의 환경-무역을 연계한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향후 환경과 연계된 무역 조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종합 전략을 수립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환경·노동 등 신통상 분야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동맹‧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미국 주도의 IPEF 참여를 검토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