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서 가까스로 구조된 30대 남성 이지용 씨…"가이드만 있었어도"
"경찰 부재보다는 행정력의 부재…골목 위아래 5명씩 있었다면 달랐을 것"
"가해자 찾기, 사건 통해 이익 얻고 싶어해…이태원, 밝은 곳 거듭나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이 경험 때문에 움츠러들고 싶지 않다. 이 사건을 통해서 성장이라고 표현하면 그렇지만,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저주의 공간이거나 낙인의 공간이 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어둡고 무서운 공간이 아니라 환경을 개선해서 밝은 문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그 곳에 있었던 생존자로서 갖는 소망입니다.”

“저는 사실 잘 웃기도 하고 담담히 살아가고 있다. 정말 걱정되는 건 확인되지 않은 루머로 2차 가해를 받았던 분들이다. 저는 아직 두려운 마음이 문득문득 들고 밤에 눈을 감기 두렵다. 그 분들은 저보다 더 힘들 것이다. 최소 30분 갇혀있던 시간과 남을 밀었다는 죄책감, 사회로부터 받는 낙인으로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잘 회복되도록 언론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여론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분들에게 특별히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10월 29일 밤 10시 10분경부터 골목 한복판에 있었다가 10시 40분 구조대원 2명으로부터 구조된 생존자 이지용 씨는 4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당시 상황을 돌이키며 소망 하나를 끄집어냈다.

바로 그 참사의 순간을 겪었고 살아남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향하는 메시지였다.

   
▲ 지난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10월 30일 오후 희생자의 명복을 기리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일반 직장인인 이지용 씨는 사고 당일 친구와 함께 이태원역을 나와 그 골목을 들어갔다가 인파에 밀려 오가지 못한 상황을 맞았고 30분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만큼 사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 씨는 그 당시 현장에서 애썼던 구조대원들, 경찰들, 시민들, 상황을 직접 목도했던 모두에게 “이런 일들은 항상 벌어지는 게 아니라 다음 번에도 벌어지는게 아니라 내가 우연찮게 그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특수한 상황에서 겪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태원에 가서 그랬다는 탓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말은 참사 당사자들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씨는 “이것들을 잘 이겨내지 못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온다”며 “또 다르게 생각하면 이 사건을 통해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고 잘 이겨냈으면 좋겠고 반대의 부정적인 얘기들을 들으면 위로의 말을 아홉 번 듣더라도 다른 한 사람의 의견이 눈에 들어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하는게 다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또 그 상황에 빠져들게 되고 ‘내가 감정이 없는 나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참사를 당한 분들께서 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잘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 10월 30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럽 출장 도중 급히 귀국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 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이태원에 인파가 몰린 배경에 대해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겼고 청년들이 함께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참사를 통해서 다 터져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작년에도 그렇고 재작년에도 그렇고 이태원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젊은이들이 그동안 억눌려 있던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참사를 미연에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사전 예방 대책을 묻자, 이 씨는 “골목 안에서의 상황을 생각하면 일부 언론이나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골목 내 인파가 통제불능의 제멋대로인 상황은 아니었다”며 “10시 8분에 영상을 찍었고 12분에도 영상을 찍었는데 일부는 우측으로 통행하면서 올라가고 있었고 광란의 움직임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만 일부 사람들이 위에서 힘으로 밀고 들어와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며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저는 한국 사람들이 후진국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씨는 “적절한 가이드, 그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 방향으로 걷거나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설치하는 것처럼 그런 가이드만 주어져도 한국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그게 불가능하긴 했다, 인파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은 관성에 의해서 움직인다, 한쪽으로 움직이는 것만 된다면 우왕좌왕하지 않고 인파가 뭉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이 씨는 “누구는 300~400명 경찰이 있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정도 통제 인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앞 골목에서 5명, 윗 골목에서 5명만 경찰이 있었어도 그런 혼란이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조대원 2명이 먼저 왔을 때만 해도 인파에 빈공간이 생겼고 그래서 1~2분 만에 제가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경찰이 몇백명 있었어야 해소 되는게 아니라, 당시 그걸 인파를 풀어줄 수 있는 몇 명이 없었기에 그렇다, 사람 숫자가 아니라 2~3사람이라도 호루라기를 불던지 확성기를 들던지 했어도 인파들이 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 10월 31일 한 청소년이 서울시청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 씨는 인터뷰에서 지난 며칠간 떠오른 ‘경찰 책임론’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묻자 “사고 후 제가 뉴스를 일일이 다 챙겨보지 못했고, 당시 상황에 대해선 제가 정확히 판단을 못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특별한 의견이 없다”며 “경찰청장이나 용산경찰서장, 112 신고 받은 분들이 어떠한 상황에 있었는지 그 내막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견을 내기 부족하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이 씨는 ‘가해자 찾기’에 열중하는 일각의 여론 및 언론을 향해 “그 부분이 참 마음이 안타깝다”며 “그 공간, 그 시간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여론에 대해 이 사건을 ‘소비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상처가 났다면 아픔을 치유하는 기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을 소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렇다, 국가애도기간도 정해졌지만 그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론이 수많은 억측을 내고 있으니 2차 가해가 일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씨는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을 범죄자처럼 몰아갈 때 화가 났다, 물에 빠진 사람인데 그 사람이 나뭇가지를 잡았다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끌고 내려갔다고 그 사람을 욕하지 않는다”며 “본능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 가해자를 찾아내려는 것들이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빨리빨리 같이 마음을 아파할 시간조차 없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운다느니 하는, 이런 것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이익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라며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 전에 ‘사고자’ 또는 ‘피해자’의 마음이 되어서 그 상황과 아픔에 대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해 줄 수 있는 여론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씨는 사고를 직접 겪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재차 염려하면서 그들에게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