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무더기 호출 여전…구시대적 관행
“사면초가 한국경제 더 어렵게 하는 것”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기업 총수들이 무더기로 증인 명단에 올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년 ‘기업인들의 시간을 빼앗지 말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무분별한 증인 채택이 되풀이되고 있는 형국이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다음 달 10일 시작되는 국정감사에도 기업 총수들이 증인 명단에 올랐다. 한국경제인협회(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재가입 문제와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 등 기업과 관련된 이슈 때문이다.

   
▲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기업 총수들이 무더기로 증인 명단에 올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년 ‘기업인들의 시간을 빼앗지 말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무분별한 증인 채택이 되풀이되고 있는 형국이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먼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국경제인연합회) 재가입 문제를 놓고 김병준 한경협 상임고문과 이재용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한경협 재가입 문제에 대해 지적하겠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민간기업이 결정한 일에 대해 정치권이 왈가왈부 하는 것은 ‘권력의 시장 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어 선을 넘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 정의선 회장, 구광모 회장, 최정우 회장 등 5대 그룹 회장을 비롯해 김동관 한화 부회장, 허태수 GS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농해수위의 경우 지난 2017년 1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출연한 이후 매년 국감에서 기업인들을 증인 명단에 올리고 있다. 

“기업인들에게 농어민을 위한 ‘자발적’ 후원을 독려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농해수위 소속 위원들의 주장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준조세’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권력기관에서 이를 독려하는 것은 ‘강제’나 다름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외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8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DL이앤씨,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작업장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철근 누락 시공’으로 비판을 받은 임병용 GS건설 부회장의 국토교통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출석도 점쳐진다.

이처럼 올해에도 4대그룹 총수를 포함한 기업인들이 무더기로 증인 명단에 오르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정감사의 본래 목적인 행정부 감시가 기업인 망신 주기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역시 매년 되풀이되는 비판이다.

특히 사안만 다를 뿐 정치인들이 기업인들에게 호통 치는 모습이 ‘구시대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 현장 최전선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기업인들에게 국회가 ‘갑질’을 하는 것은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지난해에만 해도 각 당 원내대표들이 “무분별한 증인 채택을 지양하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올해에는 이 같은 메시지마저 전무한 상태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현재 한국경제는 사면초가에 처해있다”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줘도 부족한 상황에서, 무더기로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행태는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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