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오타니 쇼헤이(29·LA 다저스)가 10년간 7억달러(약 9205억원)라는 천문학적인 계약을 한 것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7억달러 가운데 약 97%인 6억8000만달러(약 8942억원)를 계약 기간이 끝난 10년 후부터 10년간 분할 지급받는 조건의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오타니는 계약 기간 10년간 다저스로부터 받는 돈이 2000만달러(약 263억원)밖에 안된다.

계약 규모 자체가 사상 유례없는 초고액인데, 지급 방법도 상식파괴 수준이다. 오타니는 왜 이런 계약을 했을까.

   
▲ 다저스가 오타니 입단을 공식 발표하면서 오타니를 환영하는 애니메이션까지 선보였다. /사진=LA 다저스 SNS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서 '투타겸업'을 해 성공을 거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도류'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투수와 타자 모두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던 오타니지만, 그가 메이저리그 무대로 진출해서도 투타를 병행할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로 모두 뛸 수 있게 해주겠다는 LA 에인절스와 계약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도류'의 매서운 칼날을 휘둘렀다.

오타니는 투타 겸업을 하면서 2021년과 올해 두 차례나 아메리칸리그 MVP를 차지하고 올해는 리그 홈런왕(44개)에도 올랐다. 이런 오타니의 활약에 '만화 같다'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에인절스와 6년 계약이 끝나 오타니가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자, 그의 거취는 최고의 화제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느 팀과,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고 계약을 할 것인지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오타니가 선택한 팀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LA 다저스였고, 계약 규모는 예상을 크게 웃도는 10년 7억달러였다.

이제 오타니 주연의 '만화 야구'는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오타니가 다저스와 체결한 '이상한 계약'으로 볼 때 오타니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야구인생 시즌2를 '판타지'로 꾸밀 듯하다.

오타니가 마음에 품고 있는 판타지는 '우승'이었다.

오타니는 2018년부터 에인절스에서 6년간 몸담은 동안 한 번도 포스트시즌을 치러보지 못했다. 에인절스가 약팀이었던 것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전, 일본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뛸 때 오타니는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바 있다. 이후 우승은커녕 한 번도 가을야구에서 뛴 적도 없다. 그만큼 오타니는 우승에 목말라 있었다.

   
▲ 사진=LA 다저스 SNS

오타니가 다저스행을 결정한 것은 우승할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충분히 최고의 대우를 해줄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춘 팀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타니는 스스로 자청해서 총 금액의 97%를 10년 후부터 10년간 받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이유가 바로 '오로지 우승'이었다. 자신이 다저스에서 뛰는 동안, 자신에게 줄 엄청난 연봉을 다른 실력 있는 선수들을 데려오는데 써서라도 꼭 우승을 해보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10년이나 지연 지급을 하면서 법정 이자도 받지 않겠다며 손해까지 감수한 데서 오타니의 진심이 느껴진다.

오타니는 이번에 '만화 같은' 계약을 하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은 듯하다. 앞으로도 언제 깨질지 알 수 없는 역대 최고 몸값 선수 기록을 세우며 자존심을 드높였고, 지연 지급을 통해 다저스에 사치세 등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면서 추가로 선수 영입 등 전력 보강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줬다. 오타니는 10년간 200만달러라는, 메이저리그 평균연봉(약 490만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연봉을 받지만 광고수익 등으로 매년 수천만달러의 수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오타니는 다저스와 계약을 하면서 "LA 거리에서 월드시리즈 우승 퍼레이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오타니의 판타지가 담긴 이 말에서 그가 그리는 '야구 만화'의 시즌2 역시 성공을 예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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