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김윤석의 눈빛에는 형용할 수 없는 끌림이 있다. 맹렬히 타오르고 차갑게 식어가며 끊임없이 인생 캐릭터를 경신해온 김윤석. 그 깊이를 감히 헤아리기 어렵지만 매료될 뿐이다. 잔잔한 호수에 파동이 일듯, 그의 얼굴은 늘 관객들의 마음을 격렬히 뒤흔들어놓는다.

'남한산성'(2017) 속 예조판서 김상헌의 처절한 눈빛과 언변으로 관객들을 홀렸던 게 불과 5년 전인데, 이번에는 성웅 이순신으로 분해 역사극의 한 페이지를 다시 장식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개봉일인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은 "이순신 장군님이 돌아가신 날과 며칠 차이로 개봉을 하게 됐는데, 감개무량한 마음도 있고 떨리는 마음도 있다"고 벅찬 소회를 밝혔다.


   
▲ '노량: 죽음의 바다'의 배우 김윤석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임진왜란 마지막 해, 최후의 전투를 앞둔 장군 이순신으로 분해 현명한 리더를 연기한 김윤석. 그는 신중하면서도 대담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 깊은 고뇌를 지닌 인간 이순신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이순신 장군님은 워낙 말수가 적고 감정을 겉으로 절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계속 고민을 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현장이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지만, 예전 작품들에서처럼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했던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비장한 장면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김윤석은 '노량: 죽음의 바다' 출연을 제안받았을 당시 큰 부담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시나리오를 봤는데 역시나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며 "7년 전쟁의 의미, 삼국의 종속관계를 다룬 드라마의 밀도가 좋았다"고 전했다.

"결국 '노량: 죽음의 바다'에선 굉장히 많은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7년 전쟁의 끝맺음에서 그동안 이순신 장군이 쌓아온 연과 한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명량'과 '한산'을 본 상황에서 '내가 할 게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시나리오로 러브레터를 보내온 김한민 감독과 만나 이번 작품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고 한다. 김윤석은 "시나리오의 모든 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 장면을 왜 넣었는지 모두 설명하셨다"며 현장 내 김한민 감독의 모습에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정말 배짱 좋다. 진짜 지긋이 기다리면서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모습을 볼 때 '역시나 저 사람도 굉장히 대단한 감독들 중 한 분이구나'… 화살을 쏘는 모양 하나까지, 그렇게 급한 와중에도 차분히 이야기하고 뜯어고치면서 가고,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볼 때… 사실 압박이 오거든요. 촬영 일수, 그게 다 돈이니까. 그걸 버티면서 이뤄나간다는 것은 감독이 가져야 할 끈기이자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다. 그 점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합니다."


   
▲ '노량: 죽음의 바다'의 배우 김윤석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35년여의 연기 인생을 살아온 김윤석에게도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은 입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1987'을 할 때 '탁 치니 억 한다'는 대사를 내가 하게 된다니, 그것과 같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장군님의 유언을 내가 하게 된다니. 솔직히 그런 생각을 했어요. 과연 장군님이라면 어땠을까. 치열한 전투의 정점에서 전사하셨잖아요. 최대한 방해되지 않으려는 장군님의 마음으로 대사를 해야겠다. 장군이잖아요. 전쟁터잖아요. 아군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나 때문에 공격당하면 안 되니까."

고된 촬영으로 '코피 투혼'을 불사한 적도 있다. 촬영 중 쏟은 코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 응급실을 찾은 그는 의사로부터 '옷을 모두 벗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피로 누적도 문제였지만 그렇게 꽉 끼는 옷을 입었냐고 하더라고요. 맵시를 내려 갑옷을 꽉 조여 입다 보니 혈액 순환을 방해한 거죠. 투구까지 안 흔들리게 옆을 쫙 조이니까 혈압이 오른 거라고… 투구에 칼에 신발까지 착용하니 20kg이 넘어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입고 싸웠는지."


   
▲ '노량: 죽음의 바다'의 배우 김윤석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2013년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후 이번 작품으로 재회한 여진구에게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여진구는 극 중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으로 출연한다.

"여진구 씨의 운동 능력은 정말 감탄을 불러일으킨다고 하기에도 모자랄 정도죠. 판타지 장면이긴 하지만, 이면이 아버지 앞의 왜군에게 달려가서 베는 장면은 전부 '우와' 했어요. 그 친구가 몸을 쓰면 너무 멋있는 거예요. 과연 내 자식이다. 너무 훌륭하게 커줘서 너무 믿음직스럽고. 작은 거인 같다고 했는데, 그 말 하길 잘한 것 같아요."


   
▲ '노량: 죽음의 바다'의 배우 김윤석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작품에 참여한 뒤 다시금 이순신 장군의 영웅성에 혀를 내두르게 됐다는 김윤석. 그는 "이 분은 초인에 가까운 사람이구나 느꼈다. 초인의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라기보단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완전한 항복을 원했던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참된, 진정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올바른 끝맺음이 필요하다. 이것만큼은 (관객분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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