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완성차 공장이 가동중단을 반복하며 생산량이 급감했다. 반면 국내의 경우 방역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선방하며 올해는 비교적 높은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글로벌 생산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 꼽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완성차 업계는 코로나19가 아닌 노조리스크로 인해 이 같은 성과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28일 기아차 노사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26일 대의원대회를 연 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조정 신청을 했다. 다음 달 3일에는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중노위는 늦어도 다음 달 4일까지 조정 중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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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아자동차 공장 생산라인. /사진=기아차 |
만약 중노위에서 노사 간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는다고 판단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투표결과 쟁위행위에 찬성하는 조합원의 비율이 50%를 넘을 경우 기아차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하게 된다.
기아차 노사는 지난 22일 9차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인력 감축을 우려해 전기·수소차 모듈 부품 공장을 사내에 만들라고 요구하며 △기본급 12만원 인상 △영업이익 30% 성과급 배분 △60세에서 65세로 정년 연장 △전기차 핵심 부품 생산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회사측은 실무 협상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협상이 결렬됐다.
노조는 또 3분기 실적에 품질 비용을 반영하기로 한 사측의 결정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분기에 1조3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예상됐지만 품질 비용 반영 결정으로 1952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며 "빅배스(부실자산을 한꺼번에 손실 처리하는 것)를 결정한 이사회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지엠 노사는 27일 오후 20차 임단협 교섭을 진행했다. 한국지엠 노조는 지난 22일 사측과 19차 임단협 교섭을 마친 후 중앙쟁의대책위원회(쟁대위)를 열고 다음 쟁대위까지 잔업과 특근을 거부하기로 한 상태다.
이에 한국지엠은 입장문을 내고 "노동조합의 쟁의 행위 결정에 따라 1700대 이상의 추가적인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른 시일 내 협상이 타결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노조에 촉구했다.
한국지엠 노조는 부평2공장에서 생산 중인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랙스'와 중형 세단 '말리부' 등이 단종되면 공장을 폐쇄하거나 1000명 이상의 근로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신차 물량 배정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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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지엠 부평공장 입구 홍보관. /사진=미디어펜 |
하지만 한국지엠은 "특별 격려금과 성과급 등 임금에 대한 추가 계획뿐 아니라 공장별 미래 발전 전망도 제시했다"며 노조에 맞서고 있다.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 짓지 못한 르노삼성도 현재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16일 파업권을 획득한 르노삼성 노조도 지난 19일 부산공장 재가동 이후 아직 협상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6차 실무협상까지 마쳤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다음달 초 노조 집행부 선거가 예정된 탓에 협상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는 앞서 파업시기에 대해 내년 2월쯤이 적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XM3의 유럽 수출이 본격화되고 물량이 들어오는 시기에 맞춰 파업해야 회사에 타격이 크다는 설명이다. 다만 현 집행부의 임기가 다음 달로 끝나면서 다음 집행부도 이같은 계획을 이어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같은 노조원들의 집단행동으로 국내 완성차 업계의 경쟁력을 보여줄 중요한 기회를 놓칠 우려가 생긴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현재 글로벌 7위까지 밀려있다. 지난 2015년까지 만해도 글로벌 5위에 있었던 한국은 2016년 인도에 밀려 6위로 내려앉았고, 2018년에는 멕시코에게까지 밀리며 7위로 하락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공장들이 셧다운을 반복하며 상대적으로 방역에 선방한 한국은 지난 8월까지 누적 생산량이 220만대를 기록하며 멕시코(186만대)와 인도(176만대)를 제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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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을 위해 평택항에 대기중인 자동차. /사진=미디어펜 |
이에 올해는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이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로 올라설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최근 주요 완성차 업체 노조들은 '파업 압박'을 반복하며 이런 가능성이 발목을 잡힐 상황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차동차 산업이 전기차로의 전환으로 혼돈의 시기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며 뼈를 깎는 생존 경쟁에 돌입한 상황이지만 한국의 자동차 노조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업을 무기로 회사를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도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노사 갈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올해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노사갈등은 커녕 인력감축과 구조조정 등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치열하게 전개 중이다"며 "폭스바겐은 코로나 위기를 고려해 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토요타는 차등적 임금인상 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무분규 타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완성차 업체의 노사 협상타결 지연 등으로 인해 생산차질만회를 위한 연장근로가 불발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는 부품업체들의 위기는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미국 등의 회복세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 위한 양보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뿐 아니라 글로벌 제조업이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의식으로 뭉쳐야 하지만 한국은 완성차 업계 노조의 집단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변화시기를 놓칠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시장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노조의 협력이 절실한 때다"고 전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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