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가용 가능한 수사 인력이 검사 9명에 불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총 9호 사건까지 수사에 착수해 논란을 낳고 있다.
제대로 수사할 인적자원이 없다는 법조계 우려에도 사건 수사에 대해 소위 '문어발' 행태를 보이는 실정이다.
현재 공수처 검사는 정원 23명에 10명 모자란 13명이다. 이마저도 4명은 연수를 받고 있어 실제 수사부서에 배치된 검사는 9명에 불과하다.
공수처는 지난 4월 28일을 시작으로 이달 4일까지 38일간 9건의 공제번호를 부여했는데, 이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불법 채용 의혹(1·2호), 이규원 검사의 면담보고서 왜곡·유출 의혹(3호), 검찰의 '이성윤 공소장' 유출 의혹(4호),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5호), 광주지검 해남지청 검사의 직권남용(6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직권남용(7·8호), 부산 엘시티 정관계 로비 의혹(9호) 순이다.
가장 주목되는 공수처 수사는 여야를 통틀어 유력 대권주자 톱으로 올라선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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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사진=연합뉴스 |
공수처는 최근 윤 전 총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수사에 들어갔다고 밝혔지만 법조계는 대체적으로 해당 혐의 구성 요건 여부가 미지수라는 평이 많다.
공수처가 끝내 윤 전 총장을 기소해 법정에 가더라도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 받기 어려울 뿐더러 유무죄 판단 여부가 워낙 까다롭다는게 법조계 분석이다.
반대로 공수처가 불기초 처분을 내린다면 선거를 앞두고 사건 수사에 들어가지 않겠다던 김진욱 공수처장의 고집에 온갖 실소가 가해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윤 전 총장 사건 수사 착수와 관련해 김진욱 처장의 오판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두번째로 주목을 받는 공수처 수사는 '수사 여력이 없다'면서 검찰에 재이첩했던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 사건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사건에 '2021년 공제 5호'를 붙여 공식 수사 착수를 알렸다. 이는 앞서 공수처가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수사 후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판단하겠다"는 '유보부 이첩'을 요구해, 양측의 첨예한 갈등을 빚은 사건이다.
공수처는 이달 초 검찰에 이 사건을 다시 넘겨달라는 '재재이첩'을 요구했고, 당시 사건 번호를 매겼다고 알려졌다.
사건을 맡아온 수원지검은 공수처의 재재이첩 요구에 대해 수용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대검찰청에 의견을 냈고, 대검은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와 검찰간 공소제기 권한에 다툼이 있는 이상, 각 사건에 대해 법원의 판단이 나와야 한다.
이 사건 수사 착수로 공수처는 사실상 검찰과의 갈등을 재차 자초했다는 법조계 평이 나온다.
더욱이 공수처의 '문어발'식 수사가 법조계에 논란을 야기한 것은, 고위공직자 전부를 대상으로 삼는 공수처가 지금까지 수사에 착수한 9개 사건을 살펴보면 조희연 교육감을 제외하고 전현직 검사들에게 칼을 꺼내들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검찰과의 전쟁을 시작했다'는 평이 나온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15일 본보 취재에 "대부분 민감한 것들인데 수사 여건이 불비한 공수처가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검찰의 순천지청 규모도 안되는 공수처가 사건번호만 부여해놓고 진척시키지 못하는 실정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초에 김진욱 공수처장은 공수처의 권한을 절제하며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번과 같은 동시다발적 문어발식 수사는 말과 행동이 다른 내로남불"이라며 "결국 공수처와 검찰이 한 사건을 놓고 각기 따로 수사에 나서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언급했다.
공수처는 사건 수사 착수와 관련해 "규칙에 따라 사건을 입건하고 처리 결과를 고발인에 통지했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당초 검경 등 5자 협의체를 가동해 재이첩 등 유보부 이첩에 대한 사안을 명쾌히 정리하고 수사와 기소 여부에 대해 타수사기관과 협의하려고 했던 김진욱 처장의 복안이 완전히 어그러진 상황이다.
공언했던 바를 스스로 어기는 공수처의 모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문재인 정권의 새 수사기관 공수처가 걷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