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 떼어내면 '조'단위 수익…사실상 한국 대표 증권사 역할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산업은행 부산이전을 연일 강조하는 가운데 산은 직원을 비롯해 이를 반대하는 학계와 정치권의 목소리가 나왔다. 

금융업의 특성상 한곳으로 모여야 시너지를 내는 만큼 '집약성'이 중요한데, 금융허브를 서울·부산·전주 등으로 나누는 행위는 서울마저 허브로 성장할 수 없다는 평가다. 나아가 산은이 금융수익보다 자본시장에서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리는 만큼, 지방이전이 금융경쟁력 후퇴를 초래한다는 의견이다.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28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산업은행 이전 논란을 통해 본 금융중심지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28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산업은행 이전 논란을 통해 본 금융중심지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산은을 대표해 참석한 조윤승 금융노조 산은지부 위원장은 산은의 수익구조가 금융수익보다 자본시장에서의 수익임을 강조하며 지방이전을 반대했다. 

조 위원장은 "산은 자산규모 276조원 중 100조원은 정책금융용이다. 지난해 산업은행 이자수익이 4조원, 기타영업수익은 28조원이 넘는다"며 "정책금융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상업금융으로 메우고 있다. 사실상 증권사인데, 증권사보고 부산으로 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에서 (산은) 적자를 메워줄 것이냐, 적자를 줄이려면 정책금융지원을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산은 역할론을 언급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또 산은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 오해라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일각에서) 산은 가져오는 것을 정부 예산 따먹듯이 생각한다"며 "산은은 세금이 한푼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기획재정부로부터 정책자금을 한 차례 지원받았지만, 이는 정부의 기간산업안정기금·뉴딜펀드 조성, 코로나19 여파가 겹친 까닭이라는 설명이다. 산은은 BIS비율 12%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기금 조성 여파로 자금경색이 발생하면서 기재부 지원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산은 민영화의 일환으로 언급되는 '정책금융공사' 분리는 오히려 반긴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산은 민영화를 언급하다 무마됐지만,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산은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영화를 추진하는 바람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산은은 정책금융을 떼어내면 수익이 어마어마하게 날 수 있는 은행"이라며 "산은은 국회 손을 벌리지 않으면서 정책금융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미있는 기관이다. 산은이 민간으로 벗어나려는 이유는 2조~3조원 손실이 나는 정책금융을 메우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비대면금융 활성화에 대해서는 자산규모를 언급하며 반대 뜻을 내비쳤다. 조 위원장은 "산은 일부 지점은 자산규모가 2조~3조원에 달한다"며 "한 기업에 한 번 지원할 때 100억원, 1000억원씩 나가는데 얼굴 한 번 안 보고 빌려주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강다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의 '집약성'을 강조하며, 부산에서의 금융허브 역할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 연구위원은 "금융중심지 지정 이후 서울 역시 국제 금융허브 성장이 미진한 상황"이라며 "네트워크 효과가 경쟁력인 금융 경쟁력, 기업환경, 인적자원 항목이 낙후하다"고 평가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5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기관은 163개에 달한다. 특히 정부가 2009년 금융중심지를 선정한 이후를 놓고 보면 서울 62곳, 경기 2곳 등에 본거지를 뒀다. 부산에는 신규 진입한 외국금융사가 4개사 5개 지점에 불과하다. 부산에 한국지사 본거지를 둔 외국계은행은 지난 1986년에 진출한 일본 야마구찌은행이 유일하다. 

이와 함께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서울로 재이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위원은 "(본부가) 지방으로 이전한 후 핵심인력 유출로 인한 경쟁력 저하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 연구위원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의 최근 5년간 평균 퇴사자는 2016년 30명, 2017년 27명, 2018년 34명, 2019년 24명, 2020년 30명 등 약 29명에 달한다. 더불어 신규채용에도 나서고 있지만 모집인원 정원을 채우지 못해 현재 정원의 약 70~80% 수준에 그친 상황이다. 

국책은행이 외화조달의 핵심기관인 만큼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외거래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상 국책은행이 서울에서 외화조달에 힘써야 한다는 평가다. 최근 5년간의 수치를 기준으로 국책은행의 외화채권 발행량은 우리나라 전체 발행량의 36%에 달한다. 발행량이 많고, 신용도가 높아 최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토론발제를 맡은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외환위기 가능성을 언급하며 국책은행의 지방이전을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금융경쟁력을 높이려면 금융권이) 뉴욕의 월가나 싱가포르처럼 모여있어야 한다"며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한 기관들을 보면) 서울에 본부를 두고 기획실, 사장님실만 있고, 절반의 직원만 내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나라 GDP가 1조 6300억달러에 달하는데, 외환보유액은 4631억달러에 불과해 외환보유액 비중이 28%에 불과하다"고 우려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산정한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8300억달러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시장 충격이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외화조달의 핵심기관인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스위스·홍콩·싱가포르의 외환보유액 비중은 모두 100%를 넘어서고, 대만도 91%에 달한다.

이날 토론회에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특정 업무를 독점하는 공공기관은 지방으로 이전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산은은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인 만큼, 여의도에 본거지를 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3년 참여정부 시절부터 서울을 아시아 3대 금융허브이자, 국제무대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금융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도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부산 문현지구를 '해양 파생상품 특화금융중심지'로 추가 지정하면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금융중심지가 두 곳인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은행 주요고객인 대기업, 중견기업 등이 서울 및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며 "거래 중인 전체 기업 중 69.2%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고, 그 중 상장사는 72.2%나 될 정도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위 소속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약이라는 것이 변경되는 것인데 어느 시점이 지나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보다 나은 대안을 찾을 것이라 본다"며 "지방 금융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산은이 내려가면 부산은행이 좋아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지방분권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몇 년 사이 부산에 많은 금융기관이 이전한 것을 보고, 산업은행도 부산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있다"면서도 "'금융업의 특성이 있고, 기관의 특성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주장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분권, 균형발전 모두 필요하다. 그래서 공공기관 이전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대해 이견은 없다"면서도 "세계적으로 한 나라에 (금융허브를) 한 곳 만들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는 홍콩, 상하이, 도쿄와 같은 국제금융중심지와 비교하고 경쟁해야 한다"며 "국제 금융중심지 관점에서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졸속 추진으로 또 다른 사회적 논란과 비효율을 초래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가적인 이슈인 인플레이션, 주택가격 안정,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 디지털전환 등 현안들에 대한 건설적 논의가 아닌, 선거철만 되면 부활하는 국책은행 지방 이전 이슈가 논의 중심을 차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객기업과 시중은행, 증권·보험사, 글로벌 투자자들이 위치하고 있는 서울을 벗어난 국책은행이 지금 정도의 역할이라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