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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푸틴, 그리고 박현정…그들을 둘러싼 ‘어떤 오해’들

2015-11-26 21:08 | 이원우 차장 | wonwoops@mediapen.com
   
▲ 이원우 기자

SNS에는 은둔의 현자들이 많다. 좋은 말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지혜와 감동의 출처가 뒤엉켜 혼란을 야기할 때가 잦다는 점이다.

최근 SNS에서는 지난 2011년 사망한 애플 CEO 스티브 잡스의 유언이라는 글이 큰 반응을 얻었다.

“지금 병들어 누워 과거의 삶을 회상하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정말 자부심을 가졌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지고 의미 없어진다는 것을. (…)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너 자신에게 잘 대해 줘라. 타인에게 잘 대해 주어라.”

좋은 말이지만 이 문장들은 스티브 잡스의 유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SBS의 보도에 의하면 위 내용은 대만의 한 수필집에 등장하는 것이며 스티브 잡스의 실제 유언은 “오, 와우(Oh, wow)”였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IS에 대해 남겼다는 말에도 수많은 SNS 이용자들이 ‘낚였’다. “테러리스트들을 용서하는 것은 신이 할 일이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을 신에게 보내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

멋진 표현인데다 푸틴의 이미지와도 잘 부합했기 때문인지 이 말은 순식간에 SNS에서 ‘무한공유’ 됐다. 하지만 이내 푸틴은 이 말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4년 개봉한 영화 ‘맨 온 파이어(Man On Fire)’의 대사였을 뿐이다.

푸틴에겐 나쁘지만은 않았던 이 루머(?)의 진원 역시 SNS였다. ‘러시아 투데이’의 한 기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해당 내용을 올렸던 것이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푸틴이 위와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사과하는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해 결자해지(結者解之) 했다.

푸틴 해프닝은 SNS에 대한 일말의 통찰을 준다. SNS에는 허위사실이 많이 떠돌지만 그걸 정정할 수 있는 기능 또한 SNS가 가지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인터넷 격언은 여전히 나름의 권위를 획득하고 있지만, 그나마 인생의 다른 낭비들에 비해서는 조금 나은 낭비인 건지도 모른다.

물론 상황이 항상 아름답게만 굴러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진실이 드러나는 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작년 1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시작된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의 성추행 의혹사건이다.

   
▲ SNS에서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었던 박현정 전 대표에 대한 경찰조사 결과 그녀의 혐의들은 차곡차곡 ‘무혐의’로 뒤집히는 중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보도가 뜨자마자 SNS에서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었던 박현정 전 대표에 대한 경찰조사 결과 그녀의 혐의들은 차곡차곡 ‘무혐의’로 뒤집히는 중이다. 애초 서울시향 직원들이 기자들에게 돌렸던 ‘호소문’은 작성자조차 명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파급속도를 자랑하며 충격파를 남겼다. 여기에 SNS의 힘이 가세한 것은 물론이다.

스티브 잡스-푸틴의 사례와 박현정의 사례에는 ‘악의적 의도’라는 큰 간극이 있다. 잡스와 푸틴의 경우 루머 당사자의 이미지를 좋아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지만 박현정의 경우는 정확히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박현정 전 대표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2015년 한 해를 보냈다. 간신히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은 당사자인 박 전 대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보여 온 결과다. 누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왜 박현정에게 확인되지도 않은 성추행 혐의를 덮어씌워야 했을까. 이 사건의 뒤에는 어떤 파워게임이 숨어있는 걸까. SNS에는 은둔의 현자가 많다지만 박현정 전 대표 주변엔 은둔의 음모론자가 존재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그 진실을 파헤쳐야 할 시간이다.

당초 이 사건이 SNS의 관심을 얻었던 건 여성이 성추행 가해자가 되는 구도가 세간의 관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 사건은 ‘여성도 성추행 가해자 누명을 쓸 수 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SNS의 반응도 문득 궁금해지는 가운데 익명의 호소문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다음달 2일 정확히 1년을 맞는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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