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공동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
그러나 변화를 말한 KBS 사장은 고대영 사장이 처음이 아니다. 전임인 조대현 사장 역시 1년 전 보궐사장에 취임하면서 “방송의 공정성 시비를 확실히 끝내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KBS가 경영, 조직, 정체성, 정당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국민이 원하는 공영방송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고대영 사장이 밝힌 약속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나.
조대현 사장 아래에서 반미·반대한민국적 역사관을 담은 광복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가 버젓이 제작, 방영됐다. 날짜까지 조작해 이승만 초대 건국대통령을 전쟁이 나자 국민을 버리고 도망가려 했던 비겁한 도망자로 만든 왜곡보도가 전파를 탔다. 길환영 전임 사장의 옷을 벗게 만들었던 김시곤 보도국장의 세월호 교통사고 발언이 허위날조된 것임을 감사를 통해 확인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취임 당시 조직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도 그 조직문화가 만든 희대의 내부 공작 사건을 그냥 묻어두었던 것이다.
변화를 말하다 현실에 안주한 전임의 사례와 선 그어야
거창한 구호와 약속을 하는 것은 쉽다. KBS의 전임 사장은 거창한 비전을 이야기했지만 용두사미도 못되는 수준으로 한국방송을 경영하다 임기를 마친 뒤 떠났다. 취임 때 했던 약속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해묵은 숙제들만 남겼다. 고대영 사장이 명심할 것은 약속 그 자체가 아니라 실천이다. 고 사장이 밝힌 노사관계 재정립,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직종 중심의 조직문화 타파, 기자와 PD들의 제작권한만 키워놓고 책임은 지지 않는 KBS 편성규약의 문제, 남겨진 숙제들은 하나 같이 어렵고 고통이 따르는 것들이다.
웬만한 각오로는 해내기 어려운 힘든 개혁과제들이다. 고 사장은 KBS 이사회가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을 선택한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임기 3년 간 편안히 권력을 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 것이다. 거대한 공무원조직처럼 복지부동하고, 정치노조에 휘둘리는 KBS를 근본부터 변화시켜야 할 국민적 사명을 받아든 처지임도 알 것이다.
▲ 고대영 한국방송공사 사장 후보자가 지난 16일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생존을 위해 책임지는 공영방송으로 변화해야
고대영 사장은 느슨해진 조직기강을 다잡는 것과 동시에 바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노조 행태들의 원인이 되고 있는 편성규약 개정에 나서야 한다. 전임 사장이 KBS의 공정성 논란을 불식시키겠다고 만든 공정성가이드라인은 오히려 공정성 논란을 더욱 부추기는 내용으로 개악됐다. 고 사장은 본인이 직접 밝힌 대로 기존의 편성규약, 방송제작가이드라인, 공정성가이드라인, 윤리강령 등 그때그때마다 필요에 따라 급조된 것들을 모아 통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기 입맛대로 뉴스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권한은 최대한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제작 실무자들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관리자들의 역할도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체계를 다잡아 책임 있는 공영방송 언론인들로서 바로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종편이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IP TV와 뉴미디어가 주도하는 미디어환경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는데도 KBS 구성원들은 자신들만은 언제까지나 안전할 거라는 착각 속에 있다. 그것이 노조의 시대착오적인 정치투쟁으로, 개혁에 대한 집단적 반발로 반복되고 있다. KBS가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려한다면 KBS의 몰락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KBS 스스로 자구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대한민국 국가기간방송의 위치라도 국민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KBS의 운명을 재촉하게 될 뿐이다. KBS는 지금 서서히 끓고 있는 물 안에서 익어가는 개구리의 처지와 같다.
고대영 사장은 아직도 기득권에 취해 있는 직원들에게 달라진 현실을 하루빨리 깨닫도록 하여 생존력을 기를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은 이제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KBS의 나태함과 게으름, 무능한 방송을 더 이상은 참고 봐주기 어렵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