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과 안보를 외면한 채 정쟁에 휘둘리며 사상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덮어쓴 19대 국회가 또 다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4·13 총선을 시각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겨우 선거구를 획정한 국회는 여전히 테러방지법을 놓고 야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강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대표간의 ‘불안한 동거’설마저 나돌고 있다. 또 다른 야당인 안철수 신당인 국민의당도 물갈이론에 휩싸이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19대 국회의원들의 깜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블랙홀 정국을 만든 국회선진화법에서 ‘합법’이란 도구로 재등장한 필리버스터는 그야말로 임기 마지막까지 난장판 국회로 만들며 국민들의 인내심을 바닥내고 있다. 시간 때우기 경쟁이라도 벌이려는 듯 너도나도 나서서 신변잡기나 정부 흠집내기, 막발에 오도된 정보들을 정화되지 않은 채 마구 뱉어내고 있다.
대안은 없다. 그저 5시간이냐 10시간이냐 등 유치한 기록싸움과 말장난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장시간 버틴 야당의원들은 무슨 훈장감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다. 국회 정보위 소속 더민주 김광진 의원을 첫 주자로 시작한 필리버스터에는 국민의당과 정의당 소속 의원들까지 합세, 현재 더민주 서영교 의원까지 총 25명의 야권 의원들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의 이상 전선이 형성되면서 더민주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특히 개성공단과 필리버스터, 일부 공천 배제에 이견이 앞으로 있을 ‘김종인 식 물갈이’를 두고 더욱 긴장감이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사진=연합뉴스
AP통신은 지난 27일(현지시각) “한국의 필리버스터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기록 중의 하나(one of the longest)가 됐다”며 자세히 보도했다. AP는 “야권은 현재 국회가 종료되는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라며 “국회의원들이 운동화를 신고 연단에 오르거나, 화장실에 가지 않도록 물을 마시지 않는다”라며 2011년 캐나다 새민주당(NDP)의 58시간 필리버스터 기록도 연관 지어 소개하기도 했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주요 유럽언론들도 AFP 통신 보도 등을 받아 “한국의 필리버스터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기록이 됐다”고 보도했다. 그야말로 막무가내식 낯부끄러운 대한민국 국회의 모습이 전 세계에 기록으로 남게 됐다. 야당 의원들의 대책도 대안도 없는 막무가내식 비판은 스스로 무덤을 파면서며 국격마저 훼손시키고 있다.
더민주는 29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필리버스터 중단 및 선거법 처리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야당 스스로가 판 무덤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늪에 빠졌다. 공직선거법 개정이 재외선거인 명부 작성기간인 3월 4일을 넘길 경우 총선 연기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김종인 대표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고 선거법을 미루기는 어렵다는 생각이지만 장내 강경파는 주장을 꺾지 않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광우병 괴담, 천안함 폭침 자작설 등 과거 사롕롸 같이 거짓 선동을 선거에 활용하고 있다”며 “결자해지의 책임은 야당에 있다”고 강경 비난했다.
야당내 강경파들의 이 같은 행태는 전형적인 운동권식 성향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종인 대표체제에서 공천탈락의 위기감을 느낀 친노 운동권 성향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 사퇴 후 기존 야당입장과는 달리 대북 문제에 신중론을 펴왔다. 김 대표는 운동권 출신들이 강조해 온 진보·좌파적 이념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을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피력해 왔다.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대표는 당 정체성뿐만 아니라 각종 현안에서 이견을 보이면서 점차 갈등 전선이 확산되고 있다. 당 정체성과 관련 김종인 대표는 개성공단 중단에 대해 “무조건 반대가 능사가 아니다”라는 신중론을 폈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전쟁하자는 거냐”며 정부를 겁박했다.
테러방지법을 놓고 벌이고 있는 필리버스터에 대해서도 김종인 대표는 출구 전략에 대한 뜻을 비췄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트위터에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적극 지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당 정체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은 공천문제에서도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29일 더민주 비대위는 김종인 대표가 당헌·당규에 얽매이지 않고 ‘공천 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대표측은 “국가도 비상상황에서는 헌법을 일시 정지한다. 당이 지금 비상한데 당헌·당규를 넘어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친노·운동권 등은 발끈했다. 일부 당무위원들은 ‘당무위 참석 거부’까지 시사하고 있다.
김종인 대표가 친노·운동권의 대대적인 물갈이 조짐에 문재인 전 대표측도 애초 지켜보던 입장에서 공천이 진행 되면서 폭발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총선을 ‘김종인 표’로 치러야 승산이 있다는 입장이며 문재인 전 대표측은 자신들의 수족이 잘려 나가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기정 의원의 공천 배제에 문 전 대표가 “당이 어려울 때 끝까지 당을 지켰던 사람”이라는 트위터 글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의 이상 전선이 형성되면서 더민주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특히 개성공단과 필리버스터, 일부 공천 배제에 이견이 앞으로 있을 ‘김종인 식 물갈이’를 두고 더욱 긴장감이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걸핏하면 거리 정치를 외치고 선진화법을 빌미로 민생·안보 법안을 발목 잡아온 더민주가 스스로 판 무덤이다. 선동과 투쟁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지금도 구태를 재연하고 있는 야당에 대한 심판의 날은 멀지 않았다. ‘김종인 식’이든 ‘문재인 식’이든 민생과 안보를 외면한 정치인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