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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의 '무도정치'와 기로에 선 안철수

2016-03-10 09:04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김종인 대표의 거침없는 행보가 잔뜩 숨죽인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의 전주곡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국민의당 만큼은 무기력하게 넋 놓고 바라볼 상황은 아니다. 김종인씨가 이 당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통합을 바라는 제1야당 대표의 간절함이나 공손함과 같은 최소한의 작은 미덕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느낌까지 든다. 묶인 쇠사슬로부터 벗어나려 처절하게 발버둥치는 노예를 바라보면서 '네깟 게' 하는 거만한 지배자의 잔인한 희롱이랄까.

야당 인사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거대 집권여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통합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는 명분과도 거리가 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제 막 창당한 정당에게 '돌아오라'며 뜬금없는 통합제안을 한 것도 그렇고, 통합하자는 상대 당 대표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자제력을 상실했다" "정치 잘못 배웠다"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상대 당 상임선대위원장인 김한길 의원 복당 질문에 "오겠다면 받아야지 어떡하나"라고 간단히 받는 부분에선 국민의당과 상관없는 3자들까지 치욕감이 들 정도다.

김종인의 부조리가 만든 착각 '야권연대의 길'

국민의당에 대한 김종인 대표의 시각은 시종일관 지배자의 그것이었다. 애초부터 '내 것이었던 것' 기어코 언젠가는 돌아올 탕아들. 그러니 당연히 예의와 도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문제는 달력에 박힌 총선 일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국민의당이 아무리 분노하고 반발해도 "통합논의는 이번 주가 지나가면 사실상 끝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 당을 거침없이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백기 들고 투항하라는 얘기 아닌가.

이쯤되면 아무리 김종인씨의 제왕적 카리스마에 혹했던 사람들이라도 도대체 국민의당이 왜 창당이 됐고, 더민주를 탈당한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 당에 모였던 것인지 돌이켜봐야 한다. 국민의당 지지율이 빠지는 이유는 양당 체제에 염증을 낸 국민이 줄어든 탓이 아니다. 정치 개혁을 바라는 민심이 사라진 이유도 아니다. '돌아오라'는 한마디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는 이 당의 나약함 때문이다.

국민의당이 통합 제안을 거부하면서 안철수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국민의당을 창당한 근본적인 이유, 즉 지금 현재 기득권 양당구조가 그대로 간다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습니다." 이 말은 국민의당 창당 이유였고, 이 당에 모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명분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국민의당 존재 이유가 될 수밖에 없는 핵심이다.

그런데 당장 눈앞의 선거에서 이기려고, 아니 새누리당의 승리를 막기 위해서는 야권이 통합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에 다시 굴복한다면 그 순간 국민의당은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그럴 거면 안철수 의원은 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것이며, 김한길 의원은 왜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위해, 새로운 정치 질서 구축에 헌신하겠다"며 당을 박차고 나왔나.

새누리당의 승리를 막겠다고 국민의당이 더민주와 연대하는 건 기득권 한 축인 더민주의 세를 더 탄탄하게 해주는 건 아니라는 얘긴가. 지금까지 매번 상투적인 논리로 야권이 연대하고 통합해왔는데도 오늘날 야당이 이 지경인 현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국민의당과 야권통합을 제안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무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안철수 대표는 김 대표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당내 기류는 심상치 않다. /사진=연합뉴스


연대해서 크게 지지 않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국민의당 탄생도 바로 그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야권의 회의와 반성이 만든 결정체라는 아니었나. 단지 안철수 개인의 대권 욕심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한 개인을 과대평가한 것이고, 국민의당에 지지를 보냈던 여론과 호남 민심을 지나치게 우습게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안철수 의원은 또 한 번 '철수 정치' 유혹 앞에 섰고, 더민주 탈당파들은 선거패배 책임이라는 오물이라도 혹여 자신에 튈까봐 당 내분의 주체가 되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 과연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에 헌신하겠다는 자세인가. 누군가의 카게무샤인지 점령군인지 절대군주인지 모르겠는 인물의 잔인한 희롱과 차가운 무시에도 저항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언론으로부터 더민주 복당 시기나 점쳐지는 한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국민의당 이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국민의당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식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들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야당이 새누리에 비해 열세구나 싶을 때마다 통합이니 연대니 하고 떠드는 것은 결국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것 외엔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공천 개혁이니 친노 물갈이니 하는 소리도 고장 난 레코드판을 다시 틀기 위한 전주곡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선거철 한 때 장사를 위한 기획 상품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김종인 영입으로 재미를 보고, 또 연대해 크게 지지 않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김종인을 앞세워 더민주가 국민의당을 '진압'한다고 모두가 박수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면 그것도 오산이다. 이념과 신념도 불사하고 김종인을 영입해 선보이는 이래저래 무도한 정치는 국민의 정치혐오만 가중시킬 뿐이다. 제1야당인 더민주가 87년 평화민주당 이후 무려 11번이나 당명을 바꾸는 단명의 정치를 하도록 만드는 근본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새정치의 아이콘으로 차라리 장렬히 죽겠다는 안철수의 정치가, 국민의당이 눈앞의 벽과 한계를 핑계로 다시 연대란 현실에 무릎을 꿇는다면 야당의 그런 단명의 역사에 점 하나 찍는 허무개그로 끝나는 것일 뿐이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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