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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국가개조 위한 리모델링 논의할 때

2016-03-17 09:2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대한민국은 미생(未生)국가이며,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지적을 지난 글에서 밝혔다. 미디어펜 주필 조우석은 그런 구조적 흠결이 1948년 건국부터 노정됐던 한계였는데 지금껏 보완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일부 곁들였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문제제기는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지식사회에서 제대로 등장한 바 없었다. 공허한 선진화란 구호, 민주화의 헛소리만이 반복됐다. 이에 조우석은 ‘지속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하여’시리즈를 상중하 세 편으로 나눠 싣는다. 국제사회 봉쇄에도 불구하고 5차 핵실험을 공언한 북핵 위기 속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반(反)문명집단 평양의 상반된 운명이 초읽기에 들어간 게 지금이다. 이 상황이야말로 대한민국 체제수호와, 한반도 신질서 정착을 위한 올바른 정치철학을 점검을 해볼 좋은 기회다. <편집자 주>
                                   
‘지속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하여’- ③

조우석 주필

저번 글에서 지금 위기상황의 대한민국이란 베잠뱅이 차림으로 에베레스트 봉을 올라가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테러방지법 제정 정도로 끝내선 안 되며 차제에 관련법 제정은 물론 헌법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었다. 이런 문제제기는 우리만큼 그게 절박한 곳이 지구촌에 따로 없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그 글을 보고 언론사 후배 한 명이 물어왔다.

"그럼 그동안 우리나라 헌법학자들은 모두 직무유기를 했다는 말입니까? 좀 어떨떨하군요."

이에 대한 답이 오늘 글인데, 헌법 제정과 개정이란 헌법학자의 영역이기보다는 당시 그 나라의 정치사회적 합의 혹은 선택의 문제다. 최고법으로서의 헌법에는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와 근본원리가 담기기 때문이다. 응당 국가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사회세력이 있어야 하고 정치권에서 결단해줘야 조문으로 성립된다.

그런 관점에서 1948년 헌법 제정과 이후 개정과정을 훑어봐야 하는데, 대한민국을 보위할 방어적 민주주의 장치가 결정적으로 미비했던 건 건국부터 노정됐던 구조적 한계였다. 이후 1987년 개헌에 이르는 9차례 개정과정 역시 미흡했다는 걸 지적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생(未生)국가다. 완전한 국가 즉 완생(完生)국가로 가려면 자민주의의 깃발 아래 전체주의 폭정체제 북한을 해방시켜야 하고, 그 전에 방어적 민주주의의 갑옷부터 챙겨입는 게 순서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헌법제정 3개월 뒤 터진 여순사건의 여파
 
현행 헌법에는 엄연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명문화(제4조)됐지만, 그걸 운용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체제수호의 방어장치 마련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고민이 없었다. 항구적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어제 오늘 한국사회의 핵심에는 바로 그런 구조적 취약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선 68년 전 건국은 자유민주주의의 닻을 올린 위대한 건국혁명이지만, 헌법 제정과정의 논의가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게 아니다. 상식이지만, 1948년 5.10총선으로 구성된 국회가 처음 한 게 헌법초안 작성을 위한 기초위원(30명) 구성이었다. 그만큼 이 작업이 결정적이란 건 알았다.

이들은 실무작업을 위해 유진오 등 전문위원 10명을 위촉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들 관계자들이 주로 참조했던 외국헌법은 영미 계열 위주였다. 헌법학자 정종섭 교수에 따르면 전문위원들은 상해 임정 헌법도 검토했고, 바이마르헌법 등을 번역 수록한 자료집 단행본 <각국헌법총집>등을 두루 참조했던 게 사실이다.(그의 책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101쪽)

하지만 자민주의 실천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걸 너끈히 살피고 있었다는 흔적은 별로 없다. 당연히 방어적 민주주의의 철갑옷을 헌법 조문에 삽입한다는 생각조차도 힘들었다. 기초위가 만든 초안을 국회 본회의에 올려 독회와 토론과정을 거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새 나라의 이름과 국기, 정부형태(내각제 혹은 대통령중심제), 일부 용어(국민이냐 인민이냐) 등에 주로 관심이 집중됐을 뿐이다. 좀 박하게 말하자면, 당시 제헌헌법은 헌법학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명분이 좋아 보이는 헌법 조문을 취사선택해서 두루 담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에 따르는 문제가 제헌 직후 바로 발생했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反)국가활동을 규제하는 헌법 조항이 너무도 부실하거나,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는데, 그 계기가 헌법 제정 꼭 3개월 뒤에 터진 여순반란사건이었다.
 
자유민주주의 닻 올린 1947년 트루만 독트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물론 건국 자체를 정면에서 위협하는 이 무시무시한 사건을 보고 정부 당국과 사회 전체가 화들짝 놀랐다. 국가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별도의 법률인 국가보안법을 1948년 12월 1일 화급하게 제정해야 했다. 헌법에 관련 조항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일제 때 치안유지법을 베꼈다는 좌파의 주장도 있으나 그거야말로 망발이다. 그건 도로교통법 같은 보편적 법률을 참조한 경우다.)

오해 마시라. 나는 제헌헌법을 탓할 생각은 없다. 자민주의란 개념이 지구촌에 등장했던 게 대한민국 건국 불과 1년 전의 상황이었음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공산주의 봉쇄정책을 알린 1948년 3월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 발표 이후다.

소련 등이 공산주의를 진보적 민주주의 혹은 인민 민주주의라고 부르니 전통적인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게 그 때다. 19세기 이후 서구에서 실천되어온 ‘자유주의+민주주의’정치체제를 자민주의로 한 것이다. 때문에 그 말이 널리 사용된 것은 1950년대 후반이다. 국내의 경우 대한민국 건국 시기 우익 인사 일부가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사용했지만, 보편화되기 이전이었다.

한국에서 그 용어가 시민사회에 널리 사용된 것은 서구와 약간 시차가 있는 1960년대 이후다. 때문에 헌법을 그 이전에 만들었던 서구 등의 나라에서는 자민주의라는 용어가 등장치 않는다. 그럼 지난 번 글에서 모범국가로 언급했던 독일헌법은 어떨까? 기억하시겠지만, 법률용어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란 말이 그 나라 헌법에 반복 등장한다.

역설이지만,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우리헌법에 처음 들어간 건 1972년 유신헌법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로 당시 들어갔다. (통진당 해산 때 헌재가 구사했던 논리의 핵심이 "방어적 민주주의 위배"였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그만큼 소중하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 같은 후속 법안처리도 중요하다. 동시에 책임있는 누군가는 전체의 그림 즉 국가 시스템 재건에 눈을 돌려야 하는데, 지금이 그 때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왜 너도 나도 체제수호엔 무심한가?
 
지금 생각해보자면, 아쉬운 건 1962년 헌법개정이다. 4.19와 5.16을 거친 그때 방어적 민주주의 장치를 마련할 찬스였다. 헌법학자 한태연과 김철수 등이 개정과정에 참여했으나, 독일에서 공부했던 김철수의 경우 방어적 민주주의 요소 도입을 적극 검토할 위치에 있었다. 아쉽게도 그 자신이 당시 서독의 주류학계의 동향을 몰랐거나, 아니면 등한시했다.

설혹 그가 그 점을 잘 알았다해도 자유민주주의 방어장치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리라. 명분 좋은 자민주의란 공짜가 아니라는 인식, 그걸 지키기 위해선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턱없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게 87년 헌법을 새로 살펴보자. 당시 집권세력이 재야 운동권세력에 떠밀리던 형국이라서 방어적 민주주의 마련은 언감생심이었다.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내용도 대통령직선제 도입, 통치권 행사의 절차적 정당성 강조 등으로 흘러갔다.

거의 무제한의 기본권 보장이 이뤄진 것도 그때였다. 헌법학자 정종섭도 최근 쓴 대중적 저술(<대한민국헌법 이야기> 163쪽)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서는 취약한 부분이 없을만큼 완비"했음을 자랑했다. 그에 비해 방어적 민주주의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그 역시 정종섭 개인의 한계이자, 우리 지식사회의 현주소라고 보면 된다.

이제 3회에 걸친 시리즈 칼럼 '지속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하여'를 마무리 짓는다.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생(未生)국가다. 완전한 국가 즉 완생(完生)국가로 가려면 자민주의의 깃발 아래 전체주의 폭정체제 북한을 해방시켜야 하고, 그 전에 방어적 민주주의의 갑옷부터 챙겨입는 게 순서다.

재삼 밝히지만,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 같은 후속 법안처리도 중요하다. 동시에 책임있는 누군가는 전체의 그림 즉 국가 시스템 재건에 눈을 돌려야 하는데, 지금이 그 때다. 이 무거운 주제를 다룬 칼럼 시리즈가 그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디딤돌이 됐으면 큰 다행이다. /조우석 주필

[미디어펜=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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