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기자]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으로는 단연 정유·석유화학업이 꼽힌다.
자원부국인 이란이 국제 시장에 뛰어들면 최근 배럴당 20달러대로 추락한 국제유가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저렴하게 원유를 조달해 정제한 뒤 이란 시장에 제품을 내다팔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많다.
'태풍의 눈' 정유·석유화학업계, 이란호재 가능성 주목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된 이란은 최근 하루 원유 생산량을 50만배럴 늘렸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바레인의 사막지대 사키르 유전의 오일펌프가 가동하는 모습. /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이란의 원유 매장량은 1573억배럴로 베네수엘라(2977억배럴), 사우디아라비아(2684억배럴), 캐나다(1732억배럴)에 이어 세계 4위로 평가됐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1193Tcf(trillion cubic feet)에 달해 러시아(1688Tcf)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이란은 제재 해제 이후 일일 50만배럴, 1년 내 100만배럴을 증산한다는 목표로 세웠으나, 이 경우 글로벌 원유 공급과잉 현상이 심화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 조건을 감안하면 이란이 생산량을 급격히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생산 설비를 증설하거나 기존 설비의 효율을 높이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는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업계의 수출과 수입에 모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대 이란 수출 품목 1위가 합성수지(4억8천900만달러)였고 10위가 고무제품(1억100만달러)으로 집계됐다. 수입의 경우 전체의 98.3%(45억200만달러)가 원유, 0.9%(3천900만달러)가 액화석유가스(LPG)였다.
제재 이전인 2011년 우리나라는 이란으로부터 1천240만톤(t)의 원유를 수입했으나 2014년에는 절반으로 감소한 620만톤에 그쳤다.
일단 원료 다변화 차원에서 이란이 원유 수출량을 늘리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경쟁국과 원유 판매단가(OSP) 인하 경쟁을 벌일 수 있어, 국내 정유사로서는 원료 다변화와 원가 절감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석유화학업체들은 이란으로의 제품 수출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현재 일일 280만배럴로 1년 내 380만배럴까지 확대될 수 있다. 반면 이란의 정제설비 규모는 일일 200만배럴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제설비에서 휘발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못미쳐 세계적인 자원부국이지만 오히려 휘발유는 수입해 쓰는 실정이다.
폴리프로필렌(PP) 등의 석유화학제품도 자급률이 낮아 향후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품목이다.
'넘버원' 입지 삼성전자·현대기아차 수요증가에 반색
현대기아차는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다임러, 르노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이란과 현지 파트너십을 재개하고 수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오래된 중고차에서부터 신차에 이르기까지 이란은 중동에서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한국 자동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한국산 가전제품도 많이 볼 수 있는 나라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한국산 자동차의 대이란 수출은 경제제재 직전 5년간(2007~2011년) 연평균 1만7000대 수준이었다. 경제 제재 이후에는 2012년 589대, 2013년 1470대, 2014년 1737대로 10% 가까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업계는 이란 경제제재에 따라 자동차 분야의 수출 길이 본격적으로 다시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자동차 시장 규모는 제재 이전인 2011년 연간 170만대로 한국 내수 시장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만큼 교역 정상화와 경제 회복이 본격화하면 중장기적으로 예전 내수 규모를 회복할 전망이다.
또한 이란 제재 해제에 따라 현지 가전과 정보통신 시장도 우리 기업들의 호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6년간 한국의 이란 전체 수출은 연평균 0.8% 늘었지만 컬러TV(45.9%), 접시세척기(35.6%), 세탁기(18.2%), 냉장고(4.9%) 등 가전제품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곳에서 한국 TV는 프리미엄 제품이란 인식이 무척 강하다.
특히 현재 LCD, 평면화면, 46인치 이상의 TV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단순히 방송 시청 기능 뿐만 아니라 스마트 기능을 중시하는 추세다. 이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은 가전과 스마트폰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제품은 한국의 대이란 수출품 가운데서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2014년 한국이 이란으로 수출한 물품 가운데 영상기기는 3위, 냉장고는 4위, 평판 디스플레이·센서는 6위, 무선통신기기는 9위에 올랐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란에 각각 지점과 사무소를 두고 시장을 운용해 왔다. 시장 개방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면서도 당장 투자를 늘리기 보다는 시장 추이를 보면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향후 TV, 생활가전, 스마트폰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이는 비단 한국업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해외업체들도 함께 진출하는 점에서 경쟁이 심화될 수 있는 만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