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법관의 주관에 따라 판결을 막기 위해 양형기준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이른 바 '고무줄 판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양형기준제도는 포퓰리즘을 따라가거나, 제도 자체가 이중잣대가 되어 오히려 '고무줄 형량'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지난 19일 우리나라의 양형기준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해법은 있는지 토론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아래 글은 황대성변호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1.서론
형사재판을 하는 법관에게 있어서 피고인의 형을 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형사재판의 심리를 통하여 사실을 확정한 후 유죄가 인정된 피고인에게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구체적인 형벌의 종류를 선택하여 형량을 정해야 하는데, 양형 기준이 도입되기 전에는 법관이 동종 또는 유사한 사건에서 다른 법관이 판결한 선례를 참고하거나, 자신의 가치관에 양형인자를 직관에 의하여 총체적으로 판단하여, 이른바 그 법관의 “감”으로 형량을 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법관이 자신의 집에 도둑이 들고 난 이후 절도죄의 선고형량이 늘었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리고, 법관이 인사이동 후 형사재판을 처음 담당할 때는 전체적으로 형량이 세다가 법관을 퇴직하거나 다른 곳으로 인사이동이 되기 전에는 형량이 관대해진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재 우리나라 양형기준제도는 포퓰리즘을 따라가거나, 제도 자체가 이중잣대가 되어 오히려 '고무줄 형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죽음 부르는 데이트' 캡쳐.
또 똑같은 단독판사들에게 배당된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어떤 판사에게 배당되느냐에 따라 실제 형량이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전관예우 변호사가 변론한 형사사건의 형량이 그렇지 않은 변호사가 변론한 형사사건의 형량보다 적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위와 같은 양형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2009년에 양형기준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한 지 벌써 7년이나 되었다. 이러한 양형기준제도는 기본적으로 양형의 부당한 편차를 줄이고, 양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도입한 것으로, 우리나라가 대륙법계 국가임에도 영미법계 국가에서만 시행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2.현행 양형기준제도에 대한 비판
발제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그 동안의 시행을 통하여 확인한 결과 우리나라의 양형기준 준수율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법관들이 권고적 효력만 있는 양형기준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양형기준제도가 법관에게 과도한 영향을 주어 피고인에게 적정한 양형을 그르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즉, 법관이 형을 정함에 있어 양형기준에만 너무 억매여 깊은 고민 없이 형식적, 기계적으로 양형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자판기식 양형”을 함으로써 양형책임을 회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처럼 양형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양형기준만을 적용하는 것은 양형책임을 부담하는 법관이 여론이나 외부의 비판만을 의식하여 헌법 제103조에 따른 법관의 독립 원칙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양형을 함에 있어서 증거조사결과와 법정심리 내용 등을 전체적으로 종합 평가하여, 그 사안이 양형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무방한지를 고민하여, 양형기준을 떠나 피고인에게 보다 적정한 양형을 따로 찾아내야 할 것이다. 또 양형기준제도가 시행된 지 7년 정도 지났지만 아직까지 형사재판 실무에서는 충실한 양형심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충실한 양형심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형에 관한 의견진술과 증거제출 등을 통해 양형심리도 공판중심주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양형기준 적용과정도 법정에 현출하고 쟁점에 관해 검사와 피고인 상호 공방을 함으로써 양형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양형조사자료를 담당할 양형조사관도 대폭적으로 확충해야 할 것이다.
3.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양형기준제도가 시행된 지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므로, 앞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앞서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고 더욱 발전적인 제도로 잘 정착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양형기준제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사람의 냄새가 나는 판결이 선고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황대성 변호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황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