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미경 기자] 전자 강국인 한국이 휘청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을 담당하는 전자업계는 상위 10%에 해당하는 대기업이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대기업이 휘청이면 업계 전체가 흔들리는 현상을 보인다.
최근 대기업이 앞장서고 중소기업의 뒤에서 받쳐주는 수출 구조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전자 수출이 7개월째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이에 장기적으로 중견기업 허리 층을 강화할 수 있는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2만기업연구소가 발표한 ‘국내 전자 업종 1000대 기업의 최근 2년간 매출 현황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자 업계를 대표하는 1000대 기업의 매출은 312조 7639억 원으로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상위 100위까지의 매출액이 279조9402억 원을 차지했다.
전자 1000대 기업 중 상위 100위까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89.5%나 되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135조2050억 원으로 전자 업계 1000대 기업 매출 중 43.2%를 삼성전자가 책임졌다.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인 휴대전화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부진이 겹치면서 7개월째 정보통신기술(ICT)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의존도가 굉장히 강한 역삼각형(▽)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단점 뿐만 아니라 장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만약 삼성전자가 위기를 맞게 된다면 국가 경제 발전에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오게 된 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일선 한국2만기업연구소 소장은 “현재 산업구조는 머리는 크고 꼬리는 작은 올챙이형 구조로 돼 있어 도미노처럼 대기업이 무너지면 중소기업도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현상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규모의 경제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수출 주도형으로 제조사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국내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과 싸워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품업체인 중소기업이 약해지면 완성품을 만드는 대기업의 경쟁력도 함께 손실되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커가야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역삼각형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지난 1960년대 정부가 주축이 된 수출주도·개발경제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시작됐다. 4차례에 걸쳐 진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수출주도의 고도성장 전략을 근간으로 연간 7%의 경제성장률 달성을 목표로 추진됐다.
당시 1960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20억 달러(약 87억 달러)에 불과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79달러였다. GDP 첫 통계시점인 1953년에는 1인당 GDP가 67달러로 빈곤상태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작은 국내시장과 자원의 부족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출을 선택했다. 먼저 경공업 제품을 수출주도형 상품을 시작으로 이후 중공업 등으로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1980년대부터 정부는 기술자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1983년 D램(RAM) 반도체 분야에 진출, 1988년 이후부터는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1위 자리에 오른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걸치면서 1960년대 섬유, 합판 등을 60여 개 나라에 수출하던 우리나라는 현재 200여 개 나라에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 8600여 개 품목의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수출 주도형 정책으로 인해 당시 수혜를 입었던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중공업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탄생하게 됐다.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산업구조가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성장을 거듭하던 우리나라는 최근 경제성장률이 3.0% 아래로 뚝 떨어지면서 수출 중심의 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생겨나고 있다. 대기업이 이끌고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이 뒤에서 받쳐주는 수출구조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인 휴대전화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부진이 겹치면서 7개월째 정보통신기술(ICT)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 4월 ICT 수출이 작년 같은 달보다 14.3% 줄어든 125억3000만 달러로 집계된 것.
월간 ICT 수출이 전년 같은 달보다 감소한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일곱 달째다. 감소 폭은 지난해 10월 -1.6%, 11월 -7.0%, 12월 -14.7%, 올해 1월 -17.8%였고 2월 -9.8%, 3월 -5.0%로 다소 줄다가 4월 들어 급격하게 하락세를 타게됐다.
반도체는 수요 정체가 계속되고 공급 과잉에 따른 단가 하락으로 수출 감소 폭이 확대되고 있으며 디스플레이도 중국 기업의 물량 공세와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의 부진은 중국 기업의 기술력이 좋아지고 한국 업체의 현지 생산이 늘어나면서 대기업을 통한 수출 확대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창양 카이스트(KAIST) 경영대 교수는 “현재 삼성과 LG 등 대기업에게 정부가 주는 특별한 혜택 등은 없어졌다”며 “최근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기업이 시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 자체가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제가 살아나려면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많이 나와서 성장을 이뤄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을 넘어서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 가장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이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