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2명이 집단 탈북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김정은 체제선전에 혈안이 되어있던 북한 김정은에게는 뼈아픈 일이었다. 해외 식당 종업원이면 북한 당국의 나름 검증을 거친 사람들이기에 이들마저 북한체제에 등을 돌린다는 것은 북한 김씨왕조의 허구성을 전세계에 폭로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에 다른 탈북 사건과 달리 북한 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연일 대한민국 국정원이 납치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바 있는 범민련 남측본부와 코리아연대, 민권연대, 자주시보 등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단체들이 뒤이어 국정원의 납치설을 동조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우리 국민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흘러간 노래다.
문제는 민변이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법에도 근거 없는 변호사의 접견권을 들고 나오더니 급기야 인신보호법상의 구제청구를 하였다. 민변은 대한변협 추천의 인권보호관인 박영식 변호사의 확인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부터 전해진, 정확히는 재미 종북인사로 알려져 있는 노길남과 미국국적으로 중국에서 활동 중인 정기열로부터 전해진 탈북종업원들 가족의 위임장을 들이밀며 법정에서 반드시 탈북종업원들의 납치여부를 확인해야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압제로부터 탈출한 탈북종업원들의 인권이 위험한 상황은 정작 대한민국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이 법정에서 자의로 북한을 탈출했다고 말하는 순간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북한의 김씨왕조체제는 연좌제를 적용하는 체제다. 가족 중의 일부라도 체제 반대 행위를 했을 경우, 남아있는 가족들은 그 운명을 기약할 수 없다. 반대로 이들이 가족을 위해 국정원이 자신들을 납치했다고 진술하면 이들은 북한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탈북민과 탈북단체들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였다. 이들은 북한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다. 영화 '태양 아래'에서 보듯 당성이 검증된 사람만이 산다는 평양에서조차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민변이 받아 온 위임장은 북한당국의 위임장과 다름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 상황은 자유를 찾아 넘어온 대한민국 법정에서 북한 당국의 주장이 법정에 현출될 수도 있고, 재판의 결과에 따라 그들의 안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로 다가왔다.
민변이 나서지 않았다면 탈북 종업원들의 안위와 북한에 남아있는 이들의 가족의 안위 모두 무사했을 지도 모른다. 북한의 가족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납치했다는 북한당국의 주장에 말없이 동조함으로 인해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고, 탈북종업원들은 우리 정부당국에게 자신의 탈북의사를 밝히고 절차대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인권보호를 위해 나섰다는 민변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탈북종업원들의 인권이 위험해 진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민변이 들고 나온 인신보호법은 탈북민의 자유의사를 묻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정신병원 같은 곳에 강제수용된 사람들에 대한 구제를 주목적으로 만들어 진 법이다. 탈북종업원들이 납치되었거나 자발적 의사가 아닌 이유로 탈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여러 경로로 이미 확인되었다. 합법적인 국가기관의 행위에 의심을 하려면 증거자료는 아니더라도 정황이라도 있어야 한다. 민변의 막연한 의혹과 달리, 국정원이 이들을 왜 납치해야하는 가에 대한 동기도 없고 정황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민변은 국정원을 믿지 않고, 대한변협 추천 변호사도 믿지 않고, 급기야 심리를 결정한 법원도 믿지 못하여 재판장 기피신청을 냈다. 그렇다면 민변이 믿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민변의 의도가 어떠하든 결과적으로 북한김씨왕조의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다.
최근 납북자 가족들이 상식과 보편성에 기반하여 인권보호를 외치는 '자변'과 같은 자유진영에 속한 변호사단체가 아닌 민변에게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인신구제를 요청한 것은 서글픈 희극이다. 어쩌면 이들과 탈북자 단체들이 민변에게 이를 요청하는 것은 민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탈북민만이 가지는 동포애일지도 모른다. /황성욱 변호사
[황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