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낚시여행]-상백도와 하백도 갈치를 찾아서
갈치 낚시를 여러 번 다녔지만 주로 제주로 갔다. 편의성 때문이다. 서울에서 갈치 낚시를 갈 경우 오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해 낚시를 하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오면 24시간 안에 갈치낚시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여수로 갈 경우 이른 아침 버스로 출발해 점심을 여수에서 먹고, 배를 타면 서너 시간 항해해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해질 무렵부터 밤새 낚시를 한 다음,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항구로 돌아온다. 늦은 아침을 먹고 서울에 도착하면 오후 두세 시가 된다. 물론 경비야 여수 쪽이 훨씬 부담이 적지만, 왕복 버스 타는 시간과 항해하는 시간이 지겨워서 주로 제주로 다녔던 것이다.
여수 소호항. 항구라기보다는 낚싯배들의 전용 부두 구실을 한다.
하지만 여수에서 출발하는 배가 백도 부근에서 낚시를 한다기에 여수로 가기로 했다. 백도는 갈치낚시를 가지 않는 이상 평생 한 번 구경하기 힘든 섬이다. 백도는 거문도 동쪽 약 28킬로 해상에 떠 있는 약 39개의 섬으로 구성된 무인 군도(群島)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속한다. 백도(白島)라는 명칭은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섬의 수가 1백 개에서 하나가 모자란 99개이기 때문에 일 백 '백(百)'자에서 하나 '일(一)'자를 빼서 백도(白島)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가보면 무슨 설이 맞는지 알겠지.
백도는 1979년 국가지정문화재(명승지 제7호)로 지정된 섬이고 천연기념물 제15호인 흑비둘기를 비롯하여, 팔색조·가마우지·휘파람새 등 30여 종의 희귀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하고 여러 난대 식물도 많이 자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섬은 명승지로 지정되어 일반인이 출입할 수가 없다. 당연히 낚시꾼들도 섬에 상륙하여 낚시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아마도 백도 갯바위에서 낚시를 한다면 감성돔, 돌돔, 뱅에돔 등이 엄청나게 잡힐 것이지만, 누구도 낚시를 할 수 없기에 갯바위낚시는 그림의 떡이다. 대신 백도 주변은 갈치어군이 형성되어 여수의 갈치배들이 많이 출조를 한다. 이른 봄철에는 열기낚시가 백도 주변에서 이루어지겠지만, 백도 해안 200미터까지는 배도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는 조행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백도는 일반인들에게도 생소하고, 낚시꾼들에게도 로망인 그럼 섬이다.
여수 소호항에서 배는 정확히 오후 2시 30분에 출항했다. 연일 한반도가 가마솥에서 삶아지고 있었지만, 바닷바람은 시원했다. 배는 돌산도를 지난다. 돌산갓으로 유명 한 바로 그 돌산도다. 돌산도 다음 섬이 금오도, 금오도 다음 섬이 연도다. 연도를 지나면 백도까지는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남해의 망망대해다. 잠시 선실로 들어가 눈을 붙인다. 1시간쯤 잤을까. 수런대는 꾼들의 소란에 잠을 깨어 뱃전으로 나와 보니, 이게 무엇인가?
천하 절경의 섬을 배는 지나가고 있다. 배는 이미 상백도를 거쳐 하백도를 막 지나고 있는 것이다. 울릉도 태하 , 거제 소금강, 제주 성산 일출봉, 백령도 두무진 등을 선상에서 바라보았지만, 하백도의 풍광은 그 어느 섬에도 못지않다. 오히려 더 뛰어날 성 싶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어 그 위용도 엄청나려니와 바위의 생김새도 수려하다. 역광이긴 하지만 사진을 몇 장 찍어본다. 이번 낚시는 이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값어치를 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다른 꾼들은 그 풍경에 익숙한 듯 사진 한 장 찍지 않는다. 이미 수십 번은 더 구경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이 있는 서울 인사동을 사진 찍지 않듯이. 그만큼 갈치 낚시를 자주 다니는 꾼들이 이 배에 탔음이 분명하다.
선장은 하백도 동쪽에서 하백도 가까이, 또 남쪽으로, 동쪽으로 배를 몰아댄다. 갈치어군을 찾기 위해서이다. 한 시간 가까이 어군을 찾다가 어느 한 자리에 배는 서서히 멈추고 풍을 내린다. 풍은 물닻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낙하산 같은 것을 배 아래 바다에 까는 것이다. 풍을 달아야 조류를 서서히 타면서 조류와 갈치의 이동 속도에 배를 동조시킬 수 있다.
낚시 준비에 들어간다. 바늘을 일곱 개 달 수 있는 7단짜리 채비에 바늘을 단다. 사실 갈치낚시는 낚시라기보다는 어업이라고 해야 한다. 어부는 좀 더 익숙해 20단 낚시를 사용하기도 하고, 채비 두 벌을 운용하기도 하지만, 어부나 낚시꾼이나 낚시하는 방법은 똑 같다. 이른바 갈치 채낚기인 것이다. 채낚기는 갈치, 오징어 등을 잡을 때 사용하는 낚시 방법으로 그물로 잡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에, 힘들지만 미끼를 달아 낚시로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내는 어로 방식을 말한다.
흔히 먹갈치니 은갈치니 하는 말이 있지만 먹갈치나 은갈치나 다 같은 갈치다. 그물로 잡아 갈치의 은빛 비늘이 떨어져 나가 변색이 되면 먹갈치가 되고, 낚시로 잡으면 은빛 비늘이 그대로 있기에 은갈치가 된다. 당연히 은갈치의 상품성이 높다. 먹갈치가 더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건 틀림없이 요리를 잘해서 그렇다. 특히 목포 쪽으로 가면 먹갈치 조림을 잘하는 음식점들이 많아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윽고 상백도 쪽으로 해가 진다. 아마도 틀림없이 낮에 멀리서 보면 섬의 바위가 햇빛에 반사해서 하얗게 보일 것이기에 흰섬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누군가 좀 유식한 사람이 그것을 백도(白島)라고 했을 것이다. 옛날 어부들이 섬의 개수를 세어보진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부들은 그들의 직장인 바다에 오면 바쁘다. 육지에서라면 모를까 바다에서 그들은 한가하게 윤선도처럼 음풍농월을 하거나 섬의 개수를 헤아릴 수 없다. 어부식 채낚기 낚시를 하는 낚시꾼들도 당연히 바빠진다. 채비를 끝내고 냉동 꽁치를 가져다가 포를 떠서 미끼를 바늘에 단다. 꽁치도 가공만 잘하면 과메기가 되는 맛있는 생선인데, 여기서는 미끼로서의 소임을 다할 뿐이다.
중간 자리에 앉았기에, 3.5미터짜리 짧은 낚싯대를 폈다. 이 계절에는 배 중간에서는 짧은 낚싯대가 유리하다고 한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해가 완전히 지고 집어등 불빛에 바다가 환해진다. 앞 쪽 멀리 다른 배들도 불빛을 밝히고 있다. 세어보니 모두 18척이다. 반대 편도 그럴 것이니 이 백도 부근에 적어도 4,50 척의 갈칫배가 떠 있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꾼들은 이미 두어 마리를 올린다. 나의 낚싯대에는 소식이 없다. 초릿대의 움직임을 보고 갈치가 잡혔는지 판단하는 것인데 나의 초릿대는 미동도 없다. 이 때 이유는 단 한 가지일 것이다. 대가 짧아 초릿대의 상하 움직임 폭이 긴 대보다 작아 유인효과가 적어서 그럴 것이다. 귀찮지만 4.6미터 긴 대로 바꾼다. 그제서야 입질이 있다. 한 마리 입질이 있으면 바로 올리면 조과가 빈약해진다. 한 마리 입질이 있으면 그 수심층을 기억하고 낚싯대를 크게 한 번 들어 입질한 녀석을 바늘에 제대로 박아 도망 못 가게 하고(후킹을 확실하게 해두고) 다시 릴을 두어 바퀴 감은 후 그 근처의 갈치를 또 노려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은 바닷 속을 직접 보는 게 아니니 초릿대를 보고 상상 속에서 해야 한다.
배낚시에서 우럭이나 주꾸미와 같은 바닥 어종은 '봉돌과 바닥과의 대화'를 통해 낚는다면, 갈치는 '초릿대와의 대화'를 통해 낚아야 한다. 초릿대의 움직임을 보고 물렸는지 어떤 어종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를테면 초릿대의 움직임이 자주 있기는 한데 아주 미약하면 필시 한치나 오징어의 입질이다. 이때 채비를 올려보면 필시 미끼를 한치나 오징어가 다 따먹고 빈 바늘만 올라온다. 이때는 갈치를 잡을 별 대책이 없다. 기다리거나 한치 채비로 바꾸어 달아야 한다.
처음 초릿대의 움직임이 있고(예신), 이어 연속해서 초릿대를 당기는 것이 보이면(본신) 이 때 갈치 한 마리가 물었다는 것이다. 파도가 좀 있는 경우 제물 걸림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바다가 잔잔할 때는 후킹을 위한 동작을 취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는 기다려서 다음 초릿대의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같은 패턴의 동작을 반복한다. 어느 정도 물었다 생각되면 그때 채비를 걷어 갈치를 떼고 미끼를 달고 다시 채비를 내리고…. 이와 같은 동작을 밤새도록 반복하면 된다.
갈치낚시를 다녀보면 같은 배에서도 많이 잡는 꾼과 그렇지 못한 꾼들의 조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것이 바로 실력이라는 것인데, 그 실력은 숙달도를 말한다. 갈치낚시는 사실 별 어려울 게 없다. 상황에 맞는 장비와 채비, 숙달도 등이 조과를 좌우한다. 그 숙달이 어렵기는 하다.
간간히 갈치가 올라왔지만 마릿수가 적고 씨알이 잘자 선장은 배를 한 번 이동한다. 밤 10시쯤이다. 이때부터 갈치가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씨알이 너무 잘다. 갈치의 크기는 사람 손가락 개수 너비로 말한다. 2지 짜리라하면 손가락 두 개 너비 정도, 이 크기는 풀치라고도 한다. 주로 연안에서 잡히는 크기로 시장에서도 보기 힘든 작은 사이즈다. 3지 짜리부터 먹을 만하다. 시장에서 흔히 보는 크기. 4지부터는 드물지만 크고 두껍다. 회로도 먹을 만하고 구우면 두툼하다. 시장에서 주부들이 탐내지만 비싸서 감히 못사는 경우가 많다. 5지 짜리는 가끔 나오는데 아주 대물이다. 이 사이즈의 갈치를 보면 꾼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대개 놀란다. 6지부터 10지까지도 존재하지만 이런 사이즈를 잡았다고 자랑하면 대개 '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파도가 잔잔하기에 여러 물고기들이 배 주위에 몰려다니는 게 보인다. 학꽁치, 꼬치고기, 만세기가 주위에 돌아다닌다. 만세기란 놈은 거의 폭군이다. 바다 표면을 휘젓고 다니며 때로는 유유자적하게 때로는 쏜살 같이 달려들어 작은 물고기를 사냥한다. 고등어가 나타나면 특히 만세기의 표적이 된다. 고등어는 물 위로 뛰어 오르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기도 하며 필사적으로 도주하고, 만세기 역시 그런 고등어를 추적하여 대개는 잡아먹는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만세기는 고등어의 항적을 계산하여 길목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꽃게가 바다 표면을 느긋하게 헤엄쳐 다닌다. 서해 꽃게는 아니고 남해에서 주로 보이는 점박이 꽃게처럼 보인다. 긴 뜰채만 있으면 건져내면 되는데, 모두들 갈치 낚시에만 여념이 없다.
파도가 너무 잔잔하면 갈치 조황이 못하다. 미끼가 덜 흔들려 유인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인공적으로 미끼를 흔들어주어야 한다. 원줄을 여러 번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면 필시 입질이 온다. 그렇게 반복해서 올리니 다섯 마리가 걸려 올라온다. 하지만 씨알이 잘다. 그래도 열심히 낚시를 한다. 갈치 채낚기 낚시는 노동이 분명하지만, 그 노동에 삼매(三昧)의 경지가 온다. 아무 생각없이 오로지 노동에만 충실하는 것이다.
내 옆 좌우에 자리잡은 꾼들은 봉돌을 던지는 스킬로 보아 완전 고수들이다. 800그램의 봉돌을 2,30미터 던지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갈치낚시는 미끼를 끼운 뒤 채비를 정렬하여 봉돌을 바다 위로 날려 안착시키는 방법을 대개 사용한다. 이게 상당한 기술을 요한다. 물론 나같이 일 년에 두어 번 다니는 비숙련 채낚기 어부는 봉돌을 던지지 않고 그냥 차분히 내려도 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니 조과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학교 다닐 때부터 체력장 던지기에는 젬병이었는지라 몇 번 던지기를 시도해보다가 그냥 내리기로 한다. 그래도 내릴 때 마다 두세 마리는 물어 준다.
계속 잔챙이만 올라온다. 언제가는 큰 게 오겠지 하고 기다리면서 계속 낚시를 한다. 시계를 볼 틈조차 없다. 어느 정도 갈치가 쿨러에 차 간다. 바닷물을 떠서 아이스박스에 적당량을 붓는다. 이른바 빙장을 시키는 것이다. 얼음과 바닷물을 섞어 차게 하고 그 상태에서 갈치를 보관하는 것을 빙장이라 하고, 이렇게 보관하면 싱싱하여 다음날까지 회로 먹을 수 있다. 나는 잡자주의자라기보다는 먹자주의자여서 어종에 불문하고 잡은 고기를 싱싱하게 간수하는 데 꽤 정성을 들인다.
어느덧 사위가 밝아 온다. 아니 벌써, 하는 느낌이다. 밤을 홀딱 세웠건만 시간이 왜 이리 잘 가는지. 경험상 시간이 가장 잘 가는 밤은 포커 칠 때와 갈치 낚시할 때다. 44리터 쿨러에 반쯤 찼다. 얼음을 빼면 한 20킬로 잡았겠지만, 70여 마리 모두 씨알이 잘다. 간간히 올라온 고등어 몇 마리와 2지급 풀치가 대부분이고 그나마 3지급은 대여섯 마리다.
선장은 풍을 회수하고 귀항 준비를 한다. 아쉽다. 하백도의 섬들 중에는 궁전처럼 보인다는 '궁전 바위'라는 곳이 있다 한다. 상제의 아들과 용왕의 딸이 살 수 있는 신혼집을 만들기 위해 신하들이 지은 궁전이라는 전설이 있다. 용왕의 딸은 필요 없으니, 그 궁섬에서 한 이틀 낚시를 더 했으면 좋겠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미디어펜=편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