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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쟁하자는 건가?…북한·중국을 믿자는 말

2016-08-21 07:1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현 자유경제원 연구원

전쟁과 평화, 싸워야 승리할 수 있다

전쟁은 무섭다. 과정 자체가 끔찍할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무자비하게 파괴된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 전쟁은 늘 존재했고, 전쟁에 대비할 때에만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 전쟁하자는 겁니까?”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낫다” 같은 감성적인 말은 국제정치에서 통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가 대한민국은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쟁을 포기한 자, 그렇지 않은 자의 손아귀에 들어갈지어다

대한민국은 국제정치의 산물이다. 조선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을 통치했던 것, 공산주의를 고집하는 북한과 대치상황을 이루는 지금까지, 국제정치를 빼놓고 대한민국을 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전쟁의 역사다. '전쟁’이라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린다면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북한과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전쟁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다. 바보 같은 생각이다. 겉으로는 '평화’를 운운하며 '우리민족끼리’를 외치지만 주기적으로 도발을 일삼은 것이 북한이다. 멀게는 6.25전쟁, 가깝게는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이를 증명해준다. 북한이 우리의 적국이라는 것, 적국을 상대하기 위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필요한 이유다. 이것을 간과하거나 포기하면 적화통일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드 배치와 관련된 갈등은 이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 사드는 간단한 문제다. 대한민국의 적국 북한이 핵을 만들었고, 그 핵을 감지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감지할 무언가는 사드 배치다. 건강상의 문제, 중국과의 갈등, 사드운용 비용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사드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전방 100m 정도의 범위만 유해하며 인명을 살상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 또 중국이 무서워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길 포기하는 행위다. 

'지금 전쟁하자는 것이냐', '우리 민족끼리 평화로이 잘 살자'. 우리나라의 운명을 북한 김정은의 손아귀 속에 두자는 말인지 반문한다./사진=연합뉴스



중국은 북한이 핵 만드는 것을 방치했다. 사실상 도운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놓고 사드가 '미국산’이란 이유로 반대한다. 그럴싸한 명분을 이야기 하지만 철저히 중국의 이익을 위해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것이다. 그것에 놀아나선 안 된다. 건전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가 안보, 그리고 평화를 위해 '사드배치’에 당당하게 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평화 이외의 대응은 없다고 우기는 것은 싸움도 하지 않은 채 나라를 일본에 내준 사람들과 같은 논리를 내세우는 일이다. 그들은 전쟁 대신 '나쁜 평화’를 택했다. 만약 조선의 군대가 튼튼했다면 일본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교훈이다. 평화는 그냥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위협하는 자와 싸울 준비가 되었을 때, 그리고 싸워서 이겼을 때 쟁취하는 것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때문에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낫다”는 말은 도무지 성립할 수 없다. 상식이 통하지 않은 북한을 적국으로 두고 있는 우리가 할 소리는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지도자나 정치인이 이 부분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한다면 곤란하다. 국가지도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단호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성적인 국제정치 영역에서 '평화가 좋아요’와 같은 '감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느 나라든 자신들의 방침을 '정의’에 입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감행한 전쟁은 '정의’고 타국이 저지른 전쟁은 '침략’이다. 당연하다. 좋은 전쟁은 우리가 이긴 전쟁이고, 나쁜 평화는 전쟁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지고 들어가는 거다. 미국의 전략공군사령부 입구에 '평화는 우리의 직업(Peace is our profession)이라는 간판이 있는 것도 같은 논리다. 전략공군사령부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핵전쟁을 수행하는 곳이다. 이 같은 역설적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국제정치다.

전쟁 역시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 선도 악도 아니다. 지금도 총성만 오가지 않을 뿐, 대다수의 지도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 한다. 군대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보면 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을 위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1차 목적은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평화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경우, 군대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수 있다. 군인들이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전쟁이 없을 때가 바로 군대의 존재 목적이 가장 성취되고 있는 순간이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가 만들어 졌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거다. 1차적으론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70만 대군을 유지하고 수십조의 돈을 쓰며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철저히 준비해야 세계평화가 유지된다. 

중국은 북한이 핵 만드는 것을 방치했다. 사실상 도운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놓고 사드가 '미국산’이란 이유로 반대한다. 그럴싸한 명분을 이야기 하지만 철저히 중국의 이익을 위해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것이다./사진=연합뉴스



싸워야 승리할 수 있다

War thus in itself inescapably an evil. But those who renounce the use of force find themselves at the mercy of those who do not.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악이다. 그러나 무력의 사용을 포기한 자, 그렇지 않은 자의 손아귀 속에 자신의 운명이 맡겨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Studies in War and Peace, 1970, p.17)

영국의 유명한 전쟁사학자 마이클 하워드의 말이다. 반박이 불가하다. 그럼에도 북한을 향해 강경한 정책을 요구하면 “지금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감성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낭만적인 말에 움찔해선 안 된다. 전쟁하자는 것 맞다고, 전쟁에서 이겨야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만약 국가지도자가 전쟁에 관해 쭈뼛쭈뼛 대응 한다면 둘 중에 하나다. 정말로 낭만적인 바보이거나, 우리의 주적을 추종하는 사람이거나. 둘 다 위험하다. 우리의 운명을 북한의 손아귀 속에 둘 순 없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싸워야만 승리할 수 있다. /조우현 자유경제원 연구원

참고문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이춘근, 나남출판, 2007. 01. 05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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