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책임이 8일 ‘독자들께 엎드려 용서 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사과 칼럼을 냈다.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억대 비용의 유럽여행 등 향응을 제공받고 남성태·고재호 사장의 연임 로비에 연루된 의혹을 받은 송희영 전 주필의 사건과 관련한 사과이다.
송 전 주필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차 기자회견으로 의혹이 불거진 지 이틀만인 지난달 8월29일 전격 사퇴했다.
송 전 주필의 사퇴로 논설 책임을 맡게 된 양 주필은 이날 사과 칼럼을 내면서 먼저 조선일보 2대 주필인 민세(民世) 안재홍 선생을 거론했다. 일제 탄압을 받아 감옥에서 7년여를 보냈고, 6.25때 납북돼 생을 마감한 안 선생의 삶과 죽음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양 주필은 조선일보 역대 주필 17명을 사진이 걸려 있는 주필실 문밖 복도에서 느낀 소회를 밝히며 “논설실로 들어오다 우연히 안재홍 전 주필의 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들기 어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양 주필은 이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 살을 깎고 제 뼈를 부순 선배 앞에서 ‘기자 정신’이라는 말도 꺼낼 수 없게 된 후배는 도망치듯 그 사진 앞을 지나쳤다”면서 “‘나와 우리 잘못으로 저 선배들의 충정(衷情)까지 먹칠하고 말았다’는 자괴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통곡이 들리는 듯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필자가 생각하는 기자 정신은 단 하나의 일화에 응축돼 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은 권력의 압박으로 기사를 쓰지 못했다. 기자들이 사찰당하고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얻어맞던 무서운 시절이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선우휘 주필이 혼자 논설실에 나타나 사설을 썼다”며 또 한명의 조선일보 전 주필을 거론했다.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책임이 8일 ‘독자들께 엎드려 용서 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사과 칼럼을 냈다.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억대 비용의 유럽여행 등 향응을 제공받고 남성태·고재호 사장의 연임 로비에 연루된 의혹을 받은 송희영 전 주필의 사건과 관련한 사과이다.
당시 선우휘 주필이 쓴 ‘요즘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알 수가 없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가 없다’는 글로 시작한 납치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 사설을 소개하며 “선우 주필은 야근자들에게 윤전기를 세우라고 지시하고 사설을 갈아 끼웠다”며 “기자 정신이 없었다면 그 사설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명의 조선일보 전 주필의 기자 정신을 언급한 그는 “이제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며 언론 권력을 얘기했다. 양 주필은 “유신도 중앙정보부도 없다. 그러나 권력은 여전히 있다. 이제는 야당도 권력이고 기업도 권력이다. 노조나 시민단체도 권력이다”라며 “그런데 언론도 권력이라고 한다. 언론 권력이란 말이 생긴 자체가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향력이 크다고 권력이라고 한다면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언론의 영향력을 권력적으로 누려왔으면 언론 권력이다. 언론이 권력이면 기자 정신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며 “그 증상이 조선일보에서, 그것도 주필에게서 드러났다. 참담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양 주필은 “언론을 권력처럼 누리다 독자를 실망시킨 초유의 사태 앞에서는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라며 “김영란법이 ‘5~10년 전에 실시됐다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고 했다.
“김영란법이 진즉에 있었더라면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 ‘국민세금으로 월급받지 않고, 인허가권도 없는 기자들이 왜 공무원 규제법 적용을 받느냐’고 항변하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사태를 겪고서 기자들이 먼저 이 법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주필은 “(김영란법이) 잘만 정착되면 우리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자연스레 ‘언론 권력’이라는 치욕스러운 말도 없어질 것이다”라며 송희영 전 주필의 사태를 사회 분위기 탓으로 돌리는 발언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양 주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할 말은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도 항상 돌아보겠습니다’ 선배 주필들과 독자들께 엎드려 드릴 수 있는 약속은 이것뿐”이라며 사과 칼럼을 마무리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