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2000억원 규모의 배임·횡령 혐의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총수의 검찰 소환으로 그룹 앞날에 대한 롯데 임직원들의 불안과 걱정도 더욱 커지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20일 오전 8시 10분께 서울 소공동 롯데 본사 집무실로 출근해 정책본부 임원들과 짧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오전 8시 55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발했다.
재계 5위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2000억원 규모의 배임·횡령 혐의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총수의 검찰 소환으로 그룹 앞날에 대한 롯데 임직원들의 불안과 걱정도 더욱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오전 9시20분께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신동빈 회장은 취재진을 만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검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롯데그룹 총수가 비리 의혹으로 검찰에 직접 불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동빈 회장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롯데그룹 내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긴장감이 높다. 착잡한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복잡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롯데의 특성상 총수 구속은 보통 위기가 아니다. 신동빈 회장의 구속 여부에 따라 경영 공백의 장기화는 물론 경영권 향방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롯데는 그룹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룹의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고령의 나이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 최근 신격호 총괄회장은 법원으로부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 후견인(법률대리인)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도 10년간 400억원 이상 한국 계열사로부터 급여를 받은 혐의 등으로 불려갔다.
이렇게 되면 롯데그룹은 일본인 경영인의 손에 운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룹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 지난해 경영권 분쟁 이후 '투명한 롯데'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신동빈 회장의 꿈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기업은 일본 롯데홀딩스다.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인 호텔롯데의 지분 93.8%를 일본 롯데홀딩스 등이 보유하고 있는데, 신동빈 회장은 롯데홀딩스의 종업원지주회를 비롯한 5개 관계사 등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일 롯데를 아울러 경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신동빈 회장을 지지해온 일본 측 주주들이 신동빈 회장의 사법처리 결과에 따라 마음을 달리 먹을 수 있다. 또 신동빈 회장이 구속될 경우,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될 가능성이 높다.
그룹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 지난해 경영권 분쟁 이후 '투명한 롯데'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신동빈 회장의 꿈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미디어펜
그동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새로운 롯데로 거듭나기 위한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납품·하도급 업체에 대한 '갑질 횡포', 일감몰아주기, 복잡한 순환출자에 따른 지배구조 문제 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과감한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국부유출 의혹도 뿌리 뽑기 위해 호텔롯데 상장, 기업공개, 순환출자고리 해소, 경영 투명성제고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일본기업’이라는 오인을 없애기 위해 바삐 움직이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급제동이 걸렸다. 올 6월 10일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만약 신동빈 회장이 구속된다면 연 매출 90조원의 한국 롯데가 일본 경영진 손에 좌우되는 상황이 올 수 도 있다. 일본 롯데가 좌우하는 지배구조를 끊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신동빈 회장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내수침체 등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 공격적인 투자와, 국내 일자리 창출에 힘쓴 그의 능력을 참작해 롯데그룹 개혁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일본 롯데가 좌우하는 지배구조를 확실히 끊어내도록 말이다.
만약 신동빈 회장이 기소되더라도 불구속 상태애서 재판을 받게 해 경영권 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 롯데그룹은 이날 신동빈 회장의 검찰 출두 직후 배포한 공식 입장 자료에서 "최근 일련의 일로 롯데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아울러 "국내외 18만명이 종사하는 롯데의 미래 역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임직원이 힘을 모으고, 신뢰받는 투명한 롯데가 되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변화하겠다"고 강조했다.[미디어펜=신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