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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물꼬 튼 개헌, 국가 리모델링의 계기 삼자

2016-10-25 09:1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석 주필

개헌론이 공식화된 지금 분위기는 두 갈래다. 하나는 대통령 4년 중임제냐, 분권형 대통령제냐 하는 권력구조의 문제가 여전히 핵심이다. 이 사안은 역대 개헌론 때마다 쟁점이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텐데 정치권과 국민의 중지를 모아 결정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또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느냐 국회가 주도하느냐의 문제인데, 이게 무시못할 변수다. 이 문제는 "임기 내 개헌"을 들고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순수하지 않으며, 최순실 사건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 문제제기와 맞물려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마디로 참 못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시정연설 키워드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내출혈과 지리멸렬함을 생리로 하는 한국정치과 언론의 퇴행적 성격을 염두에 두자면, 그런 대응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좋다. 그들의 지적대로 그동안 개헌 논의를 막아 온 건 박 대통령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는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누차 피력해왔다. 하지만 상황이 변한 지금 또 다르게 전혀 새로운 창의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이런 인식 속에서 향후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지금이 개헌의 적기이며, 1987년 체제를 마감하고 2017년 체제를 만들 때라는 절박한 인식을 박 대통령이 새롭게 담아낸 게 이번의 개헌론 공식화다. 

조우석 주필


대통령 시정연설 중 그런 인식을 압축한 게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표현이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한계를 어떻게든 큰 틀에서 풀어야 하고, 공약 사항이기도 한 개헌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그의 언급이야말로 박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표출한 대목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때문에 이번 개헌론이 당리당략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는 차원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국민적 지혜를 모아가야 옳은데, 핵심은 '개헌의 정치철학'에 대한 합의다. 지금 시점에서 왜 개헌을 해야 하는지의 큰 원칙과 방향에 대한 암묵적-명시적 공감대 형성이 그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독재가 문제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좋으냐의 방법론도 큰 틀에 대한 합의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도출될텐데, 내 판단으로 개헌의 정치철학은 '개헌을 통한 국가 리모델링'이 유일한 답이다. 이점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국민적 합의가 없다면 이번 개헌은 내 논에 물대기 식으로 지리멸렬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막연한 얘기가 아니다.

국가 리모델링에서 핵심의 하나가 국회정상화-국회효율화 문제다. 논의가 분분한 대통령 4년 중임제냐, 의원내각제냐, 아니면 이원집정제냐의 3파전 권력구조 개편 문제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게 의회정치의 효율화 문제가 아닐까?

개헌과정에서 이런 인식에 대한 투영이 이뤄져야 정상이다. 지난 4월 총선 전에도 이 문제는 일부 거론이 됐다. 방법의 하나가 국회가 제 일을 하지 않으면 자동 해산되도록, 그리고 행정수반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도록 하는 명문 규정을 담도록 헌법을 고치는 문제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독재가 문제 아니던가? 

사실 입법권과 예산심의권만으로도 국회는 대통령을 압도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권, 국정감사권, 국정조사권, 국무총리 임명 동의권에 더하여 장관 인사청문회로 대통령을 압박하기도 한다. 반면 대통령은 국회에 대하여 법안거부권 이외에는 국회 해산 등 효과적인 견제 도구를 가지지 못한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최근 10~20년 새 정치사회적 위기 국면에서 국가 전체가 휘청대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헌법기관을 포함한 공권력 등 주류사회는 거의 무력화되고, 여의도 국회는 '배반의 정치'에 몰두해왔다는 걸 우리는 익히 경험했다.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가 휘청대는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내년 예산안 관련 시정 연설을 위해 국회에 들어서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점과 정치권의 개헌 공감대 형성 등을 들어 헌법 개정을 임기 내 완수하겠다고 선언했다./사진=청와대


서애 유성룡이 외친 "지금은 나라를 다시 만들 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87년 체제를 만든 지금 헌법은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에 대한 트라우마를 바탕에 깔고 있고, 때문에 지나치게 국정 최고지도자 대통령의 권한을 해체시키는 쪽으로 진행됐다. 이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그게 과연 옳았느냐 하는 반성도 필요하다.

마무리다. 재확인하지만 이글의 요지는 개헌의 정치철학이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만들기가 되어야 하며, 다른 말로 국가 리모델링이라고도 나는 반복해 표현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의회정치의 효율화를 개헌과정에서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인데, 사실 국가 리모델링이란 시대와 상관없이 항상 요구되는 국가혁신의 과제다.

그런 걸 <징비록>을 쓴 서애 유성룡도 언급했다. 그 역시 임진왜란 이후 국가개조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지금은 나라를 다시 만들 때(國家再造之運)"란 슬로건으로 압축했다. 400년 전 조선왕조가 현실 감각을 잃고 휘청댈 때 그걸 경고했던 메시지였다.

지금 21세기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린 기적적 성장과 자유민주의의 혁명을 이뤄냈다. 하지만 풍요에 취해 길을 잃은 게 지금이다. 북핵 실전배치를 코앞에 두고 우리가 죽느냐, 저쪽이 주저앉느냐의 한반도 엔드 게임도 치열하다. 선제적 국가혁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걸 모든 걸 성찰하고 대안을 만들 때가 지금이다. 원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이란 지렛대를 통해 국가 리모델링에 성공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나는 보고 싶다. 그런 개헌의 정치철학이 무시된다면, 올해 개헌론이 또 한 번의 정치쇼로 끝날 위험성도 없지 않음을 이참에 경고해둔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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