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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김제동 개념발언? 소신 있는 자들이 침묵하는 사회

2016-11-24 17:0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정우성 유아인 같은 배우, 윤종신 윤도현 같은 가수 등 연예인들이 정권을 질책하고 있다. 이른바 사이다 멘트와 함께. 이에 "소신 발언"이니, "용기 발언"이니, "개념 발언"이니 하며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만 가지고 이런 기사들이 나온 게 아니다. 연예인이 특정 정치 성향을 띠고서 정치적 발언을 할 때마다 이런 반응들이 나왔다.

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 좋게 생각한다. 의아한 것은 똑같은 정치 발언을 해도 누구는 개념 있고 소신 있으며 용감한 연예인이 되며, 다른 누구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립다는 가수 이승환은 정의로운 가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개그맨 김제동은 ‘개념 연예인’이지만 배우 공유가 존경하는 사람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자 "역사관 의심", "논란", "물의" 등의 기사가 범람한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게 "용기 발언" 같은 표현이다. 하나 물어보자, 지금 이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는 게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무소불위의 권력은 바로 국민여론, 국민정서다. 박 대통령이나 위정자를 욕하며 놀리고, 그것을 유행하는 놀이문화로 즐기고 있는 시대다. 비판 비난 조롱을 넘어서 온갖 음모론과 유언비어를 공유한다. SNS에서도 직장 상사를 욕하는 것보다, 대통령 씹는 게 훨씬 쉬운 시대다./사진=연합뉴스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고 있다. 초등학생도 시위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박 대통령을 조롱한다. 좌파 성향의 사람은 물론, 나를 포함한 우파 성향의 사람들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온 국민이 대통령의 적이다. 절차에 따라 탄핵안이 발의되면 어렵지 않게 끌어내려질 것이다. 공분은 엄청나고 여론은 과열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 고위공직자들을 욕하는 언행이 ‘오늘만 사는 사람의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이를 두고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모두가 욕하는데, 나도 한 마디 얹겠다는 건 오히려 기회주의에 가깝다. 진짜 용기가 필요한 건 그 뜨거운 목소리들에 찬물을 끼얹으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예컨대 천호식품 회장 같은 경우 말이다.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소신이나 용기 등의 표현은 거대한 여론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자기주장을 하는 그런 목소리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천호식품 회장은 시위를 비판했던 문제의 글로 사회적 매장을 당했다. 천호식품 불매운동까지 일어났다. 말 한 마디에 매장되고, 생계를 위협받는 무서운 세상이다.

한국의 정치적 이해 수준과 문화, 감성 등은 아직 1970~80년대 운동권에 머물러있다. 독재를 경험해본 적도 없고, 권력의 무서움을 느껴본 적도 없는데 386 세대가 물려준 투쟁정신에 매몰되어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다. 자신들은 나약한 민중이며, 절대적 힘을 지닌 권력자들에게 핍박받고 있으나, 찍소리도 못 내는 그런 존재라는 착각.

사회 전체는 연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 제 6공화국을 통해 제도적으로 완벽한 민주주의가 정착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고 있다. 초등학생도 시위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박 대통령을 조롱한다. 좌파 성향의 사람은 물론, 나를 포함한 우파 성향의 사람들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온 국민이 대통령의 적이다. 대통령을 처형하라는 플래카드가 광장에 걸린다./사진=미디어펜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무소불위의 권력은 바로 국민여론, 국민정서다. 박 대통령이나 위정자를 욕하며 놀리고, 그것을 유행하는 놀이문화로 즐기고 있는 시대다. 비판 비난 조롱을 넘어서 온갖 음모론과 유언비어를 공유한다. SNS에서도 직장 상사를 욕하는 것보다, 대통령 씹는 게 훨씬 쉬운 시대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권력 앞에 떨며 침묵을 종용받는 불쌍한 민중들인 양, 이상한 망상에 빠져 언더도그마에 호소하며 자위하고 있다.

이러니 누구나 정치에 있어서 정해진 답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약자에게 허용되어야 할 소신, 용기 등의 수식어까지 거대여론에 편승한 강자들이 가져가버린다. 그 누가 신념을 갖고 용기 있게 발언할까.

다수가 원하는 발언을 정답으로 강요하며 이를 소신 있고 용기 있다고까지 떠받드는 사회는 진짜 소신 있고 용기 있는 사람들을 악마화하며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거대악은 항상 이런 분위기로부터 탄생했다. /우원재 리버티타임즈 대표

[우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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