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세 번째 대국민담화를 갖고 국회에서 결정하는 대로 퇴진 의사를 밝혀 사실상 ‘질서 있는 퇴진’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다시 한번 국회에 공을 넘겼다.
야당과 여당 일각에서 탄핵 추진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이날 박 대통령은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말해 정치권에 새로운 변수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먼저 대통령 탄핵은 야당이 주도해 합의하고 여당의 일부 비박계를 동참시켜왔지만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다시 정국 수습 주도권은 여당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박 대통령의 제안대로 대통령 임기 단축으로 조기 퇴진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총리부터 인선해야 하고, 동시에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한 뒤 조기 대선을 치를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이는 그동안 야당이 주장해온 대통령 즉각 퇴진과 다르기 때문에 여당 지도부의 대야 설득이 필요하다.
또 그 일환으로 최근 불거져나오고 있는 헌법개정 추진으로 박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방안도 본격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제안을 수용한 것으로 김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이 주도하는 개헌을 고리로 삼아 제3지대 추진도 속도를 내는 등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이후 일단 야당은 반발하는 기류이다. 민주당은 “탄핵을 모면하려는 꼼수”라며 “탄핵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국민은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원한다”며 “탄핵을 앞둔 꼼수를 경계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하지만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에 탄핵 일정의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초연하게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그런 말씀을 하셨고, 퇴진 요구에 대한 답을 주셨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적 요구는 대통령 퇴진에 있었다고 저는 읽었으며 (오늘 담화는) 거기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야당이 대통령 제안에 대해 반발해 그대로 탄핵을 추진할 경우 여당 비박계마저 가세한다면 대통령 제안은 무색해진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예정대로 결의될 것이고, 헌법재판소에서 최장 180일간 탄핵안 심리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다만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비박계가 대통령 제안을 수용할 경우 정치권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탄핵을 부결하고 대통령 퇴진 일자를 정해 조기 대선을 치루게 된다. 다만 이럴 경우 60일 이내 대선을 치르게 한 헌법 조항만 ‘원 포인트’로 개정해 여야 간 형평성 있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견은 법조계 원로 헌법학자들 사이에 이미 나온 주장이다. 박 대통령도 이날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담화는 지난 5차례 촛불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따라서 국회도 대통령 제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은 분명해보인다.
또한 앞서 국회가 대통령의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국회총리추천 등 제안을 거부해온 까닭에 협상의 시기가 다소 늦어졌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제라도 경제와 안보 혼란을 최소화시킬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퇴진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이왕이면 개헌 논의까지 이뤄진다면 이번에 새삼 비판이 높았던 제왕적 대통령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개헌도 달성할 수 있다. 게다가 박 대통령으로서는 두 번째 탄핵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보다 개헌을 제안힐 대통령으로서 스스로 임기를 단축해 퇴진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퇴진 문제를 국회에 일임하면서 개헌이나 무죄판단을 담보로 걸지 않았지만 야당 은 사실상 승부수로 보고 있어 그대로 탄핵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제 국회는 법 절차대로 탄핵이 의결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현직 대통령 퇴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 정치적 역량을 보여야 할 때로 보인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