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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논란' 다시 불붙은 이유는

2017-11-11 11:00 | 김규태 차장 | suslater53@gmail.com
[미디어펜=김규태 기자]"낙태 수술을 매우 많이 한 의사로서 내가 모자보건법에 있는 규정을 어기고 낙태수술을 해준 이유는 딱 두가지다. 

내가 해주지 않으면 백이면 백 다 다른 병원에 가서 한다. 법대로 한다면 대한민국 모든 의사가 낙태수술을 해주지 말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낙태하려는 산모는 어디서든 한다. 더욱이 낙태가 힘들어질수록 산모들의 수술 비용만 높아진다."

"다음 이유는 그 법을 모두가 준수했을 때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생긴다. 모두가 법을 지켜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누가 책임지나. 결국 낳은 여자와 아이의 인생이 망가지는 사회문제가 생긴다."

낙태죄 폐지 논란이 다시 불붙은 현상에 대해 30년 넘게 일선 현장에 있어온 산부인과 의사가 밝힌 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 게시판의 '낙태죄 폐지' 주제는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답변하겠다고 밝힌 20만 명을 훌쩍 넘은 23만 5372명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마감했다.

법조계는 낙태죄 폐지 논란에 대해 1995년 개정 후 22년간 그대로 유지되어 온 낙태죄 형법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는 법조항에 대해서 최근 5년 만의 재심리에 들어갔다.

관건은 5년 전 헌재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와 달리 여론 풍향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낙태죄 폐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낙태에 찬성하는 의견이 52%, 반대가 36%로 조사됐다. 7년 전 동일한 조사에선 찬성 34%, 반대 53%였으나 지난 7년 사이에 역전됐다.

당초 1973년 제정된 낙태죄는 사문화되어 유명무실해졌으나 지난 2010년 이후 정부가 낙태시술 단속을 강화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는 연일 커졌다. 산모들이 낙태약을 불법구매하고 낙태약 수요에 부응하여 중국산 가짜가 판쳤다. 산모에 대해 비보호적 비위생적인 불법 낙태시술이 비일비재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합법적 낙태도 임신 24주 내만 허용하고, 모자보건법이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불법으로 간주되어 산모에게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사진=연합뉴스


현재 낙태죄 폐지에 대한 찬반 입장은 팽팽하다.

폐지 찬성 측은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남자가 처벌대상에 빠져 있는 법적형평성을 들며 이에 대해 전면 수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태죄 조항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폐지 반대 측은 태아 생명권 보호와 낙태 증가 우려를 명분으로 들고 있다.

법조계는 현행 모자보건법에 대해 낙태허용 사유를 지나치게 제한했다는 점에서 위헌성이 있다고 봤다.

반면 천주교와 기독교 등 종교계 일각에서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태아의 생사를 왜 여성이 결정하냐고 반문하고 있다.

의료계는 현실적인 입장이다.

"종교적 이유건 법을 준수하기 위해서건 낙태수술을 안해준다고 하면 여성이 낳아서 키울까. 아니다. 다른 곳에 가서 수술한다. 수술해줄 수 없는 이유를 대면 알았다고 나가면서 나를 존경하고 칭찬하는 산모는 하나도 없다. 판검사 딸에게 애인이 생겨서 열렬히 사랑해서 임신했다고 치자.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인해 결혼을 못하게 됐다. 그래도 아이를 낳아서 키우라고 판검사 애비가 자기 딸에게 얘기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

또다른 산부인과 의사가 밝힌 일선 현장의 소리다.

일각에서는 의료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모자보건법 낙태금지 조항을 완전 폐기하기 보다는 낙태금지 기준을 넓히고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낙태죄 자체를 폐지하지 말고 허용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보완하자는 제안이다.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는 법조항에 대해 최근 5년 만의 재심리에 들어갔다./사진=미디어펜



이충훈 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이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들도 양심적 의료행위로 인한 원치 않는 위법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며 "모자보건법 및 형법을 사회적합의를 거쳐 개선해 여성 건강권을 존중하하고 사회적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부나 배우자가 유전적 정신장애 신체질환이 있거나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강간,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산모 건강이 우려될 때 예외적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한다.

합법적 낙태도 임신 24주 내만 허용하고, 이외의 경우는 모두 불법으로 간주되어 산모에게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불법 수술을 한 의료인은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놓고, 헌재가 5년 만의 재심리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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