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연기 인생 50년을 바라보는 백윤식에게 '반드시 잡는다'는 간만에 자신을 내려놓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범죄의 재구성'부터 '싸움의 기술', '타짜', '관상', '내부자들'까지 작품마다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었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가벼워졌고, 극 중 동네 터줏대감답게 정겨운 모습도 보인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의 배우 백윤식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NEW
'반드시 잡는다'(감독 김홍석)는 30년 전 미제사건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이 또다시 시작되자, 동네를 잘 아는 터줏대감(백윤식)과 사건을 잘 아는 전직 형사(성동일)가 촉과 감으로 범인을 쫓는 미제사건 추적 스릴러.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배우로 살아온 백윤식(71)과 성동일(51)의 만남은 소위 '젊은 배우들' 위주로 돌아가는 영화계를 향한 도전장이다. 중년 배우들의 노련한 합은 신선한 케미를 유발하고, 쉴 새 없이 즐겁다가도 노인층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드러낼 땐 마음 한켠을 진하게 건드린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백윤식은 '반드시 잡는다'에 대해 "시니어의 이야기인데, 한국 영화에서는 다룬 적이 없었던 소재"라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다는 건 배우의 욕망이고 바람일 거다. 배우로서는 다양한 맛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를 느껴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의 배우 백윤식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NEW
- '반드시 잡는다'를 직접 본 소감은.
▲ 배우들은 자신의 작품을 볼 때 아주 까다롭다. 평가가 야박하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보기 때문에 웬만해선 호평이 나올 순 없다. 그리고 아쉬워하고. 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일반 관객들이 매기는 것보다 까다로운 점수가 나온다. 연기를 할 땐 끝 없이 창작하고 만들어내고 싶어한다.
- 영화 속 모습은 원작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의 심덕수와는 차이가 있다.
▲ 재밌는 캐릭터다. 원작을 보면 심덕수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6·25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북한군과 직면했을 때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아이의 입을 막는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질식사해서 죽는다. 그런 데까지 손 대면 심덕수의 회고전이 되나? 김홍선 감독이 잘 각색한 것 같다. 배우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책을 보고 결정하는데. 인물의 캐릭터도 분량도 중요하지만 전체 흐름을 보고 결정하게 된다. 그래도 김홍선 감독이 많은 내용을 포함시켰더라.
- 그간의 캐릭터들과 비교했을 때 연기적 재미는 다른가.
▲ 어느 쪽이 더 재미있는 건 아니다.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거니까 (똑같다). 작품에 참여할 때마다 전작은 정리되고,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되는 것 같다. 인물의 인생을 놓고 연기를 생각한다. 같은 사회에 들어가있지만 어느 분야에서 지내느냐. '내부자들'이 권력을 쥔 상류층이었다면 '반드시 잡는다'는 소시민이고… 작품을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든다.
- 액션 신이 많았는데 애로사항은 없었나.
▲ 체력적으로 부치는 건 없었다. 스포츠클럽에 가서 체력 관리를 한다. 많이 움직인다. 지금도 허리는 30 사이즈를 유지한다. 우리 큰애(백도빈)가 항상 옷을 사다 주는데 사이즈가 변하진 않더라. 다이어트를 하진 않는다. 먹는 걸 좋아해서 다이어트 하면 큰일 난다.
- 성동일을 향해 "연기가 늘었다"는 칭찬을 해 화제가 됐다.
▲ 후배니까 자연스럽게 전작을 보게 된다. 근데 전에는 그런 연기를 본 적이 없다. 제가 원래 그런 말을 안 하는 사람인데, 편하게 부담 없이 얘기한 거다. 연륜 있는 배우가 후배한테 그런 얘기를 하니 주변에서는 막 웃더라. 성동일은 앞길이 창창하다. 발전적인 개념의 차원이 있는 얘기였는데, 성동일도 그 칭찬을 제대로 받아들인 것 같더라.
- 후배 배우들을 위해 연기 조언을 한다면.
▲ 알아서 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웃음) 전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레슨을 하는 학교도 있고,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본다. 혼자 개척해나가는 것부터 터득해야 한다. 레슨을 하거나 어떤 방향을 알려주면 괜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스스로 부딪혀서 터득해야 할 거다. 배우 생활은 한 단계 한 단계 터득하다 보면 어느 판에 와 있는지 알게 된다.
- 아들 백도빈·백서빈과도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나.
▲ 그것도 지들이 알아서 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웃음)
- 백서빈 주연 영화 '산상수훈'이 12월 7일 개봉하는데… 기대가 크겠다.
▲ 좋다. 반가운 소식이고. 규모가 크진 않지만 독특한 작품이고, 의미가 있다. 언론에서는 '우리 영화계에서 이런 작품이 나온다' 하고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부분 아닌가 싶다. 스님이 연출을 맡으셨는데 성경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재밌다.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의 배우 백윤식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NEW
- 지난해 국정 농단 파문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 블랙리스트 명단에 언급됐다. 당시 심경은 어땠나.
▲ 지난해 11월 런던 한국영화제 '백윤식 특별전'이 열렸다. 좋은 작품을 모아놓은 특별전이었는데, 한창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영국 관객이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질문을 하시더라.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이 있지 않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전 시대가 암울해서 피 끓는 청년 시절도 편하게 보내지 못했다. 독재정권부터 모든 상황을 겪었다. 제가 그 시대의 증인이다. 다행인 건 후손들은 좋은 세상에서 살지 않겠나 싶다. 전 정치적인 개념은 없지만 국민으로서 당연히 할 소리라고 생각한다. 권력이 민족의 좋은 방향으로 잘 쓰였으면 좋겠다.
- 1970년 KBS 9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오랜 시간 배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지금도 여전히 피는 끓는다. 저는 나이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힘닿는 데까진 (배우 활동을) 할 거다. 근데 또 사라지는 것도 멋있게, 잘 사라져야 하지 않냐. 은퇴작 시기도 중요한 것 같은데 그게 제 맘대로 될 것 같진 않다. 다만 그걸 염두에 두고 아름답게 멋있게 사라지고 싶다.
- 어떤 배우로 불리고 싶나.
▲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가 좋다. 배우로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배우의 본분을 다한다는 것이다. 연기력을 갖췄다, 모든 역할을 소화한다, 표현을 잘한다… 모두 그런 의미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의 배우 백윤식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NEW
[미디어펜=이동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