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는 급작스레 발생한 쿠데타로 북한의 1호와 함께 남한에 피신하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대행인 곽철우(곽도원)는 전쟁을 막자는 일념으로 이들과 힘을 합친다. 그렇다. '강철비'는 남북의 '철우'가 살기 위해 벌이는 공조다.
영화 '강철비'의 영어 제목인 'steel rain'은 실제 존재하는 클러스터형 로켓 탄두의 별칭으로, 살상 변경이 매우 커서 전 세계 140여개국 이상이 사용 금지협약을 맺은 무기다. 양우석 감독은 남북관계가 언제든 무서운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타이틀을 이같이 지었다.
'강철비'는 한국 영화 최초로 시도되는 핵전쟁 시나리오일 뿐더러 시뮬레이션 영화가 주는 의미성이 빛나는 작품이다. 과거사를 다루는 작업은 이야기의 큰 얼개를 따라가면 되기에 비교적 수월하다. 반면 시대의 흐름을 현실성 있게 예측하며 메시지까지 담아내는 과정은 수많은 설전을 야기하기에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위태로운 미래를 그려내며 주제의식을 관철한 양우석 감독의 뚝심은 그 자체로 영화계에 큰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남북관계라는 무거운 소재를 풀어가는 방식은 전작 '변호인'과 마찬가지로 지혜롭다. 송강호를 내세워 소시민적 유머와 진한 페이소스 사이를 넘나들었던 양우석 감독의 재기는 투톱 주인공이 주고받는 교감으로 장을 옮겼다.
정우성을 향해 친근하게 이죽거리는 곽도원의 모습, 자신의 햄버거를 가로챘다고 툴툴대며 국수 세 그릇을 비우는 정우성의 순박한 모습까지. 그뿐만이 아니다. 정우성이 남한에 넘어오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면서도 상황이 유발하는 웃음에 끊임없이 집중한다. '강철비'는 아릿하면서도 썩 즐거운 영화다.
특유의 유머 코드로 몰입 진입장벽을 낮춘 '강철비'는 극이 전개될수록 단단해지고 심장을 철렁하게 한다. 핵전쟁이 가져올 무시무시한 공포는 살갗에 싸늘하게 와닿고 한반도에 무자비하게 터지는 포탄, 북한군의 총에 쓰러지는 보통 장병들의 모습, 2차 한국전쟁 등 극단의 상황에 내몰리니 발을 빼는 주변국의 처세가 실로 막막하다.
물론 북한의 특수부대가 남한에서 자유롭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 모습, 군의 경계 태세와 방어선이 어처구니없이 뚫리는 모습 등에서는 과한 비약이 보인다.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매듭을 어떻게 풀어가든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변명이 있을까. 사회에 만연한 안보불감증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위기의식을 파고드는 양우석 감독의 노골적 연출처럼 보인다.
이런 점들을 가리는 건 배우들의 놀라운 호연이다. '아수라'로 한 차례 호흡을 맞췄기에 어느 정도의 기시감을 예상했으나 정우성과 곽도원은 전혀 다른 색깔의 케미를 낸다. '곡성'에서 이미 넓고 깊은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한 곽도원은 가볍게 또 무겁게 변모하며 극을 책임지고, 정우성은 우직한 분위기에 북한 사투리·화려한 액션까지 가져간다. 조연의 품격을 보여준 배우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조우진, 김갑수, 김명곤이 치밀하게 쌓아올린 캐릭터의 무게감은 '강철비'에서 맛본 가장 큰 쾌미였다.
북한의 위협과 전쟁 위기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강철비'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직 대통령으로 분한 김의성과 차기 대통령 역 이경영의 대립이 보여주듯 어떤 대북 이데올로기가 맞다고 단정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지만, 남북이 처한 현실과 대비책·결과를 똑똑히 바라보라는 것이다.
천만 관객 신화의 재점화를 점치기보단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를 미래로 확장함으로써 뼈 있는 담론을 던진 양우석 감독의 진정성에 주목해야 할 듯하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