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승마 지원을 제외한 뇌물공여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묵시적 청탁'으로 요약되는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판결을 깬 항소심 재판부에 대해 "형사재판의 정치재판화 변질을 막은 상식적인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5개월간 사건을 심리해온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 이재용 부회장 및 삼성 전직 임원 4명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1심에서 유죄로 보았던 혐의 대부분을 무죄라고 판단하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이 부회장을 석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지원과 무관하며 청탁으로 볼 증거가 없다"며 특검 주장을 불인정했고, 1심에서 유죄로 보았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및 재산국외도피 부분에 대해 무죄로 뒤집어 이 부회장 형량을 감형했다.
법조계는 재판부의 이날 선고에 대해 "정치재판으로 변질되지 않고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형사재판으로 돌아왔다"며 "형사재판에서 증거주의에 대한 법리를 두고 명확하게 정리한 용기 있는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특히 뇌물공여 인정 여부를 놓고 가장 큰 쟁점이었던 묵시적 청탁과 관련해 법조계는 "당초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이자 지분을 충분히 확보한 총수였고, 정부로부터 경영권 승계에 은밀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고 그러한 여건도 아니었다는 상식론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앞서 삼성합병 무효확인 소송을 심리했던 2심 재판부 또한 당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여지가 있었던 점을 들면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에 배임으로 볼 만한 요소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법조계는 이날 "끊임없이 이어져온 특검의 일방적 추측 보다 증거재판주의 등 형사소송법 기본원칙에 부합해 달라는 변호인단의 논리에 재판부가 손을 들어준 것"이라며 "시장 결정에 따라 삼성 합병이 이뤄졌고 박 전 대통령-이 부회장 간 독대와 무관한 일이라는 변호인단 입장이 재판부를 설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오후2시 이재용 부회장 및 삼성 전직 임원 4명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1심에서 유죄로 보았던 혐의 대부분을 무죄라고 판단했다./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이날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에 대해 전반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부회장 측 이인재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64)는 선고 직후 기자들에게 "중요한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용기와 현명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며 "다만 변호인 주장 중 일부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은 상고심에서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선고에 대해 아직 공식입장을 내지 않았다.
일부 시민단체는 노골적인 봐주기 판결이라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예측보다 더 노골적인 판결"이라며 "분명히 뇌물이고 횡령인데 법관 눈에만 그렇게 안 보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고,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삼성 봐주기 판결로밖에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에 대한 시민들 및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여론은 비판과 환영 반반으로 갈렸다.
일각에서는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솜방망이 처벌도 아니고 재판도 아니다', '재벌이 죄값을 치르지 못하는 사회'라고 개탄하고 나선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법상식에 부합한 명판결', '다행히 삼성이 미국으로 나가진 않겠다', '그래도 씁쓸하다 지난 1년간 삼성이 치른 기회비용은 누가 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 이재용 부회장 컴백 대환영'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