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한진 기자] 23년 동안 그룹을 진두지휘하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LG그룹은 구 회장이 이날 오전 9시 52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1년간 투병을 해온 고인은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 외의 조문과 조화도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다. 애도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유족 측은 밝혔다.
이는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아했던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그룹 측은 설명했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고인은 1995년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앞서 미국 애슐랜드대 경영학과와 미국 클르블랜드주립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고인은 1975년 LG화학 심사과장으로 LG에 합류했다. 이후 1980년 LG전자 기획심사본부장, 1981년 LG전자 이사, 1984년 LG전자 일본 동경주재 상무, 1985년 LG회장실 전무, 1986년 LG회장실 부사장, 1989년 LG 부회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20여년 동안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LG 제공
'정도 경영'과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도전주의와 시장선도'를 경영 이념을 바탕으로 삼았던 고인은 '글로벌 경영에서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신규 사업은 시작하면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임직원들의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해왔다.
주변의 만류가 심했으나 고인은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승부수를 던지며 LG의 체질 개선을 주도했다.
이 같은 고인의 경영 전략을 중심으로 LG는 빠르게 사세를 불렸다. 전기·전자, 화학 등 기존 사업의 체질 강화는 물론 통신, 디스플레이, 전장, 바이오, 에너지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1994년 말 30조원대 매출을 기록했던 LG는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성장했다.
고인은 성장사업에 대한 투자도 과감하게 단행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 미래에 주춧돌을 놓았다.
고인은 슬하에 아들과 딸 둘을 뒀으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2004년 양자로 들였다.
구본무 회장이 2016년 2월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학원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LG 제공
'포스트 구본무 시대'는 고인의 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주도할 전망이다. 구 상무는 다음달 29일 예정된 ㈜LG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된 뒤 경영 일선에서 활약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는 구 상무가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에게 계열사 경영을 일임하고, 신성장 사업 발굴에 매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고인을 대신해 그룹 실무를 책임졌던 구본준 부회장은 일정 기간 구 상무의 멘토 역할을 한 뒤 향후 계열 분리를 통해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