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현의 민족과 자유의 새지평(2)-해방후 60년지나도 맹위떨치는 주사파들
민족주의는 우리 근현대사를 이끌어온 핵심 키워드이다. 일제의 36년간 식민지지배와 해방, 그리고 6.25북한의 남침, 남북분단 상황 등...민족주의와 민족이란 개념은 항상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이념갈등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게 만드는 핵심용어이다. 자유와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대혁명이후 본격 발현된 자유주의는 서구의 근현대사를 추동한 핵심 키워드였다. 자유는 천부인권, 사유재산보호와 함께 서구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발달을 이끌었다. 반면 공산주의는 급진적 민족주의, 전체주의, 사유재산권 부정 등으로 인류사에서 끔찍한 재앙을 초래했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한국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가 대륙으로 진출하여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등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통합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통일준비도 겸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매우 고무적이다. 우리가 그리는 밑그림대로 된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우리의 힘이 없이, 자체 분열 해결없이 동북아 지역통합이 순조로울지? 중국, 러시아 등이 쉽게 호락호락 협조해줄지 걱정이 앞선다.
▲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중국은 원전 건설 등 180억파운드(약 31조원)라는 돈보따리를 빌미로 영국을 무릎꿇릴 정도로 오만해졌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을 조롱하는 혐한 서적(嫌韓書籍)이 판을 친다. 아무리 봐도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중국과 일본에 맞서 우리 한민족의 대재난(大災難)을 막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과 맞서 재난을 막고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은 100년 전, 500년 전, 1000년 전과 같다. 그러나, 그 경쟁방식은 전쟁이 아니라 경제여야 한다.
여기에는 단결된 마음과 교육으로 연마된 세련된 지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사색당쟁 비슷한 말싸움을 일삼고, 지성보다는 거친 감성이 거리를 뒤덮는다. 분열, 시위로 날밤새우는 방식으로는 외적(外敵)에 맞서 이길 수 없다.
분열·분단의 원인에는 신념의 차이가 크다. 이것이 이념이나 종교에 관한 신념처럼 자신의 주된 인생관에 관한 것일 때 더욱 심각해진다. 종교적 신념으로 공동체가 나뉜 로마의 동서교회 분열도 그러하였다. 동쪽에 사는 그리스인들은 성령이 성부(聖父)에게서만 나온다고 생각했다. 반면, 로마 등 서쪽의 라틴인들은 성령은 성부(聖父) 뿐만 아니라 성자(聖子)에게서도 나온다고 믿었다. 동쪽에서는 서쪽의 생각이 하나님을 진정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니 싸울 수 밖에. 결국 교회는 쪼개졌다.
▲우리처럼 반도에 갇혀 사는 한민족에게서 무산계급 지상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좌파학자들이 이를 신봉, 변호하는 한 한민족 공동체의 단결은 불가능하다. 국가간 생존경쟁에서 탈락하고 민족전체가 대재난(大災難)의 위험에 빠지는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사회주의 혁명과 주체사상에 경도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오른쪽)이 내란음로 혐의등으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진정 한민족의 자주권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력 우위를 확실히 하려는 고도의 정치꼼수이기 때문이다. 6.25 직전에도 그 꼼수를 한껏 부리다가 새벽 4시에 잠자는 서울을 포격했었다.
무산자(프롤레타리아)를 위해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맑스주의자들에 의하면 민족공동체 전체에 대한 관심은 엷어진다. 오히려 민족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대립‧투쟁하게 하는 ‘당(공산당)’의 건설에만 집중한다. 무산계급이 아니라면 모두 투쟁 대상으로 보고 적대시한다. 민중노선(인민민주주의 노선)은 그 동기를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계급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민족 공동체 전부를 아우르지 못한다.
60억 생존 경쟁자 중에서 오죽 못났으면 하필 형제·동족을 대상으로 싸워야 하나? 수많은 민족공동체 구성원 중에서 유독 민중(무산계급)만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역사의 종, 노예에 불과하단 말인가? 민족공동체 또는 국민공동체 중에서 무산계급에 속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무산계급을 주인으로 떠받들어 섬기는 하인이 되어야 하나? 이와같이 북한이나 좌파의 민족 인식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이론틀 안에서 만들어졌다.
이런 생각으로는 분열대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처럼 반도에 갇혀 사는 한민족에게서 이런 무산계급 지상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좌파학자들이 이를 신봉, 변호하는 한 한민족 공동체의 단결은 불가능하다. 국가간 생존경쟁에서 탈락하고 민족전체가 대재난(大災難)의 위험에 빠지는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즉,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는 일본과 러시아의 사이에 있어서 두 방면에서 공산주의 조류가 흘러오는 관계로 구태여 공산주의 선전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공산주의 사상이 일반을 지배하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일제로부터 핍박받는 식민지 상황도 불만이지만 사회경제적인 계급 존재가 더 큰 문제라고 보았다. 그러한 때 열악한 농촌의 여건은 공산주의자의 계급갈등 선동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숙주(宿主)를 제공하였다. 이들은 이미 갑오경장 때 폐지된 양반제도의 계급성(階級性)을 다시금 거론하며 계급혁명 후 모든 사람이 토지를 소유하게 하는 새로운 “그 날”이 오리라고 부추겼다.
해방 이후 북한 김일성 정권이 시행한 토지의 무상몰수(無償沒收), 무상분배(無償分配)에 남한 농민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공산주의자’가 기승을 부린 한 요인이었다. 북쪽의 토지개혁 소식은 이제 막 고향에 돌아왔으나 실업상태에 있었던 대다수의 가난한 농민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혁명기에는 격정적인 심리(군중이 지배하는 심리)가 발동되기 마련이다.
해방정국과 같은 격랑기에서는 흔히 이성이 마비되고 감성이 강해진다. 또, 논리보다는 격정적 웅변에 호소하게 된다. 그 궁극적 결과로 우파보다 좌파의 기치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은 타협보다는 투쟁을 선호하게 하였으며, 대화보다는 거리의 정치가 더 유효하게 만들었다.
해방공간의 격정적 파도에서 공산주의는 최적의 환경을 맞았다. 여기에서 포퓰리즘(대중주의, 민중주의, 선동주의)이 머리를 들게 되고 냉정한 이성에 호소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로 매도(罵倒)되고 말았다. 좌파들은 농민들의 젖줄과 같은 토지를 두고 선동하여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외쳤으니 이 좌파의 기세를 누를 길이 없었다. 민족분열의 씨앗, 민족 안에서 계급으로 나누어 죽기살기로 싸우자는 생각은 이렇게 한반도에 뿌려졌다.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북한의 호전성과 이를 찬양하는 주사파, 그리고 또 이 주사파를 감싸는 사람, 또 그를 외곽에서 지켜주는 희한한 삐딱선이, 트집잡기 전문 시위꾼들을 염려하는 것이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