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보건복지부가 불법 낙태 수술을 시행한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불법 낙태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낙태죄 폐지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7일 '형법을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형법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 및 시행했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불법로 낙태 의사 및 이를 의뢰한 여성은 각각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데, 여기에 의사의 처벌조항을 강화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낙태 수술의 90%가 빈곤층이나 미성년자들"이라며 "합법적인 낙태 수술은 시행하지만 음성적으로 수없이 이뤄지는 불법 낙태 수술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또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 중절수술에 대한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원 판결이 나와야 행정처분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이 의사를 신고하면 바로 자격정지가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의사의 형법 위반 여부는 공무원이 판단하기 힘들다"며 "낙태죄와 관련해 의사 신고가 들어오더라도 수사를 거쳐 사법부가 판단해야 행정처분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불법 낙태 수술 전면 거부'에 대해 "이제까지 해왔던 불법 낙태 자행을 시인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에 대해 "모자보건법에 있는 규정을 어기고 낙태수술을 해준 이유는 낙태하려는 산모는 어디서든 한다는 것이고, 낙태가 힘들어질수록 산모들의 수술 비용만 높아지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술해줄 수 없는 이유를 알려주면 알았다고 나가면서 의사를 존경하고 칭찬하는 산모는 하나도 없다"며 "법 준수를 위해 낙태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산모는 다른 곳을 찾아가 수술한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죄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인식과 사람들의 행태가 법과 괴리되어 있어서 벌어지는 논란"이라며 "처벌 강화로는 불법 낙태를 근절할 수 없고 낙태에 대한 현실적인 수요를 인정하고 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낙태 수술 전면 거부'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낙태죄 폐지' 논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5년 만의 재심리에 들어갔지만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을 기약없이 미뤄둔 상태다.
이진성 헌법재판소 소장 등 재판관 5명의 임기가 다음달 19일 끝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재판관들이 취임 후 사건기록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언제 결정날지 알 수 없게 됐다.
법조계는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1995년 개정 후 22년간 그대로 유지되어 온 형법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보고 있다.
당초 1973년 제정된 낙태죄는 사문화되어 유명무실해졌으나 지난 2010년 이후 정부가 낙태시술 단속을 강화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산모들이 낙태약을 불법구매하고 낙태약 수요에 부응하여 중국산 가짜가 판쳤고, 산모에 대해 비보호적 비위생적인 불법 낙태시술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또한 지난 2013년 및 2015년 중국산 가짜 낙태약 판매책이 경찰에 검거됐을 당시, 판매사이트 모두 해외에 서버를 두고 대포통장을 이용하고 있어 적발하기 어렵기도 했다.
헌재가 지난 2012년 8월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후 지난해 11월까지 전국 법원에서 이뤄진 관련 판결 80건 중 대부분 선고유예(41건)와 집행유예(29건) 처분이 내려졌고,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1건이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처벌 강화' 조치로 오히려 낙태 수술의 음성화가 조장되어 더 큰 사회문제로 커질지 주목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합법적 낙태도 임신 24주 내만 허용하고, 모자보건법이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불법으로 간주되어 산모에게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자료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