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 시각) 중국과 한국 등을 언급하며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일본의 수출 규제를 받고 있는 우리 통상분야가 위협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일본이 한국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미국이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문제삼으며 우리 통상이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이 향후 90일 이내에 개도국 대우를 중단할 경우 쌀, 마늘, 고추 등 한국 농산물은 관세나 보조금 지급 등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축보조 상한이 대폭 축소될 것에 대비해 쌀 등 가격과 연계된 농산물 직불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 시각)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3분의 2가 자신들을 개도국이라고 정의해 WTO 체제 내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USTR에 지시한 문서에는 중국을 비롯해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 10위 중 홍콩, 브루나이, 카타르, 쿠웨이트, 싱가포르 등 7개국이 개도국이라고 적시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자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인 한국과 터키, 멕시코 역시 대상국에 포함했다.
지난 1995년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체제에 이어 출범한 WTO는 출범 당시 개도국을 국제 자유무역질서 내로 편입시키기 위해 '개도국에 대한 특별대우(S&D)' 조치를 시행해 왔다. 개도국으로 인정받으면 관세 인하 폭이나 조정, 보조금 규제 등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이 WTO 체제에서는 규칙을 피하고 특혜를 받고 있다는 데 불만을 품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오는 30~31일 중국 상하이에서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 있어 이번 '개도국 지위 혜택중단' 경고는 압박 성격이 강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WSJ은 "중국이 자국 시장을 자유화하는 것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WTO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이용만 당해왔다”면서 “중국이 개도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각종 혜택을 보면서 미국을 희생시켰다”며 중국을 핵심 타깃으로 꼽았다.
그는 90일 이내에 WTO가 이같은 문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USTR이 해당 국가들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농산물 협정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혜택을 누려왔던 한국도 불안한 상황이다.
미국은 △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현행 G20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국가(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최소 1만2천56달러) △세계 무역량에서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4가지 기준 중 하나라도 속하면 개도국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이 4가지 기준에 모두 포함되는 유일한 국가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선진국임을 선언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취약점인 농업 분야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농업을 제외하고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한국이 WTO서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쌀, 마늘, 고추, 인삼, 양파 등 수입산 농산물에 매기는 관세를 대폭 감축하거나 쌀 변동직불금 등 보조금 지급 등서 제한이 생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선진국 의무를 이행하면 한국 쌀 소득보전직불제도의 변경은 불가피하다”며 “쌀 등 특별품목에 부과된 513%의 관세를 154%까지 낮춰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우리나라 농업생산이 특정 소수 품목에 집중돼 있어 핵심 1~2개 품목의 확실한 예외 확보가 농업 보호에 효과적일 수 있다"며 "감축보조의 상한이 대폭 축소될 것에 대비해 쌀 등 가격과 연계된 농산물 직불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미국은 그간 개도국 지위 관련 WTO 회원국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특혜를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며 “현재 농업분야를 포함한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은 회원국별 입장차가 커 산물 관세 감축, 개도국 특별품목, 농업 보조금 감축 등에 대해 더 이상 의미있게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입장차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의미 있는 논의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 적용되고 있는 농산물 관세나 보조금은 차기 농업협상 타결 때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