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경제 정치 연예 스포츠

[데스크칼럼]지소미아 종료, 불가피한 선택 맞나

2019-08-25 18:31 | 김소정 부장 | sojung510@gmail.com

김소정 외교안보부장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정부는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리면서 ‘안보 자립’을 선언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도 ‘소재‧부품 자립’을 외쳤지만 결국 일본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권한 정부라면 소재‧부품 자립이나 안보 자립은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만 정말 자립이 가능할 정도가 되려면 엄청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책무 중에는 주변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정교한 외교정책이 당연히 포함된다.  

이번에 문재인정부는 한반도 정세와 한국경제가 가장 불확실한 시기에 이웃나라 일본과 안보협력 단절시켰다. 이 때문에 한일 청구권협정을 깎아내리는 문재인정부가 정말 원하는 것은 일본과 새로운 관계 정립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진짜라면 이미 소득주도성장으로 피해가 큰 국민과 기업을 볼모로 잡는 것인데다 한반도 평화구축도 안된 상태에서 한미동맹을 내건 것이므로 무모하다. 이래서 야당은 조국 후보자 논란 등 정국 돌파용, 내년 총선용이라는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고, 또다시 국민들은 갈라치기 당할 수밖에 없어졌다.   
 
지소미아 종료는 일본의 경제보복에서 기인했고, 일본의 경제보복 배경에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있다. 여기서 한일 간 해묵은 과거사 문제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징용 배상과 한일 청구권협정을 둘러싼 문재인정부와 아베정권의 다른 시각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대법원에서 징용배상판결이 나오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바로 한일 청구권협정의 3조 ‘분쟁의 해결 조항’에 근거해 중재위 설치를 요청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3조에는 ‘분쟁 발생 시 외교적 경로로 해결해야 하고, 외교적 경로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어느 한쪽이 중재를 요청하면 30일 이내 중재위를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일단 중재위 구성을 거부한 문재인정부는 이후에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서 실기한 측면이 크다. 한일 갈등이 확산되면서 ‘반일 프레임’을 띄어 내년 총선에 이용하려 했던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배포된 일이 있으니 일부러 실기한 것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문재인정부를 향해 “국가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두 나라의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한 이전 정부의 약속을 무시한 것은 외교실책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행정부가 적극적인 중재를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진짜 한일 문제를 풀고 싶었다면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같은 대승적인 차원을 선택했을 것이다. 박정희정부와 달리 김대중정부는 현 정권이 계승하겠다는 정부이지 않나.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안보’와 ‘경제’를 걸고 일본과 싸움을 벌여보겠다고 밝힌 청와대는 “일본이 우리 국가 자존심을 해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분노했다. 또 “앞으로 국방예산 증액, 군 정찰위성 등 전략자산 확충을 통한 우리의 안보역량 강화를 적극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자국 우선주의가 만연한 국제정세에서 우리 스스로 지켜낼 수 있을 정도의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일본 인텍스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일본과 안보협력 단절을 선언한 한국정부를 미국이 자신들의 동북아 안보전략에서 이탈하려는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은 안보 자립은 커녕 한미동맹 균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상 트럼프행정부는 “문재인정부가 지소미아 거짓말을 했다”고 반발했다. 미국이 ‘한국’(ROK)이란 말 대신 ‘문재인정부’(Moon administration)라고 지칭한 것도 이례적인데다 “우려” “실망” 등의 말을 사용해 외교적으로 강력한 반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반응은 지소미아의 탄생 배경을 안다면 당연한 것으로 봐야 한다. 2016년 11월 한일 정부가 맺은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의 바람보다 미국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지소미아 체결 전후 박근혜정부는 일본과 급진적으로 관계 회복 절차를 밟았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이듬해 지소미아를 체결했다, 그리고 이후 몇 달이 지나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가 전격 배치됐다. 

미국이 한국을 제외한 채 대만, 필리핀, 베트남, 인도를 잇는 ‘신 애치슨 라인’을 그으면 한국은 외톨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미국은 일본을 군사대국으로 키울 계획을 세울 것이다. 

한미일 안보공조 고리가 약해진 틈을 타서 북한을 포함한 중국과 러시아가 동맹 해체를 더욱 적극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빌미도 줄 수 있다. 당장 중국은 “지소미아 파기는 한국의 자주적 권리”라고 공식 논평을 냈다. 중국은 당초 지소미아 체결 때에도 강력 반발했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남북 간 대화가 끊긴 상태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면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침범하는 것이 현 한반도 상황이다. 지소미아 종료로 일본은 앞서 시행한 3건의 수출제한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백색국가 제외 조치도 시행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청와대는 “이번에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외교분쟁을 키운 문재인정부가 이번에는 일본과 미국을 상대로 안보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많다. 분명한 것은 청와대가 앞으로 하겠다고 제시한 것은 ‘말’에 불과하지만 그 대신 깨뜨린 것은 ‘협정’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해서 트럼프행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이끌어내려 했다는 해석도 제기한다. 하지만 지소미아 파기 여부 고려는 이번 한일갈등에서 미국의 중재 역할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끝냈어야 한다. 이미 지소미아는 종료됐으므로 더 이상 ‘지렛대’로서의 역할도 없고, 공들였던 한미일 안보협력체계를 잃은 미국정부를 대하는 한국정부의 부담만 늘게 됐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종합 인기기사
©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