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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최종현 회장 기일 21주기…'자유경제'를 생각하다

2019-08-26 15:28 |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조우현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기자가 되기 전 근무했던 자유경제원(현 자유기업원) 리버티홀에는 고 최종현 SK 회장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한국에도 자유주의 시장경제 이념을 확산시키는 연구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고 최 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최 회장의 바람대로 리버티홀에서는 자유시장경제 창달을 위한 교육, 세미나가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자유경제원에 근무하는 동안 자유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인지한 기업인이 있었고, 그런 기업인이 설립한 기관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만 20여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시장경제 창달은 고사하고, 갈수록 반기업‧반시장화 돼가는 사회에 야속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돼준 건 최 회장이 자유기업센터를 설립하며 발표한 취지문이었다. 

특히 국민 정서와 다르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을 때 최 회장의 창립 취지문은 큰 위로가 됐다. 이 지난한 오해를 풀기 위해 우리가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유경제원의 ‘파운딩 파더’인 최 회장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아들인 최태원 SK 회장이 ‘사회적 가치’라는 말을 언급했을 때 의아스러움을 지울수 없었다. 사회적 가치와 사회주의가 100% 일치한다고 볼 순 없지만, ‘사회적’이라는 용어의 속성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언어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본래의 속성이 사라진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 앞에 ‘사회적’이 붙으면 이윤 창출과 거리가 먼 기업이 되고, ‘책임’ 앞에 ‘사회적’이라는 용어가 붙으면 개인의 책임이 다른 사람이나 국가에 떠넘겨지는 마력이 생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사회적’이라는 용어를 “은연중에 ‘옳은’이란 냄새를 풍기는 족제비처럼 교활한 언어”라고 단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치’ 앞에 ‘사회적’이라는 용어가 붙어도 마찬가지다.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순식간에 측정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이 되고 만다.  

SK 측에서는 “사회적이라는 말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전략일 뿐”이라며 이 같은 비판에 대해 해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기업의 경영 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이 전쟁 같이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자신은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지독한 기업인,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무래도 지나쳤다.

최태원 회장이 전쟁 같이 살아온 시간 덕분에 지금의 SK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수십만 명의 직원이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고, 소비자들의 삶은 풍요로워졌으며, SK가 낸 세금은 국가 운영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것들의 총합이 그가 창출해낸 사회적 가치다. 

왜 그런 훌륭한 일을 해놓고도 스스로를 착한 사람과 거리가 멀다고 반성하는 걸까. 아마 최종현 회장의 진단대로 ‘우리들의 삶의 질은 나아졌지만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의 입지가 불안한 사회에선 ‘사회적 가치’를 내세우며 이를 통해 ‘실리’를 챙기는 것이 영리한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고 최종현 회장의 자유기업센터 설립 취지문 전문이다.

마포 자유경제원(현 자유기업원)에 걸려있던 고 최종현 SK 회장 사진. 현재는 여의도로 이전한 자유기업원 열림홀에 전시돼 있다. /사진=미디어펜



<자유기업센터 설립 취지문>

우리는 사회주의의 몰락과 복지국가의 쇠퇴를 보면서 한국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 지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대단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30여 년의 고도성장이 가져 온 결과로 우리들의 삶의 질은 나아졌지만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정책도 다양한 이해집단의 목소리 때문에 제대로 시행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개방의 파고가 더없이 높아질 것임을 생각하면, 한국인은 철저한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이 땅에 구현함으로써 경제적인 강국으로 자리를 잡고 이를 기초로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민족의 생존을 보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을 맞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이나 관습의 개선과 개혁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교육·홍보·계몽사업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독립된 기관을 필요로 한다.

이 기관의 사업의 순수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설립하며, 명칭은『자유기업센터(The Korea Center for Free Enterprise)』라 한다. 이 기관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관련 회원사들의 출원금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자유기업센터』는 자유시장경제의 창달을 위한 경제교육사업, 정책홍보사업, 그리고 기업 및 기업이미지 개선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감으로써 한국인들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1997년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장 고 최종현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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