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교육 복지가 불러온 풍선효과: 찜통교실 위기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학부모와 학생 등 교육 수요자들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학원가의 번창이 그 반증이다. 그런데 그런 학교 교육마저 교육을 위한 기초적 환경을 만들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무상급식과 만 3~5세 유아들에 대한 무상교육인 누리과정에 드는 예산으로 인해 서울시 교육청이 예산부족에 처해 학교운영비를 삭감하게 되고 그 결과 교실 냉난방에 드는 예산조차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는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선거과정에서 나온 ‘무상’ 교육복지 제공이라는 포퓰리즘 공약에 유권자들이 현혹된 결과이다. 교총에 따르면, 지난 7월 30일 예산 부족에 시달려온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시내 초·중·고에 학교운영비를 평균 500만원 삭감하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일정한 예산 아래 ‘무상’ 교육복지 지출을 늘리니 교육 부문의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지는 소위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현재 학교운영비는 서울 초·중·고의 경우 평균 4억3000만원이며, 공공요금(전기·수도·가스), 교육활동비(학습교구·기자재 구입비), 보조교사·교무행정지원사 인건비, 시설보수비, 교사 회의비와 출장비 등으로 지출된다고 한다. 일선 학교에서는 교실 냉난방비나 시설 보수비용을 가장 먼저 줄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학생들이 찜통더위 속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교육에 포퓰리즘이 들어온 결과다.
▲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이 15일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교육재원 올바로 쓰이고 있는가>라는 교육쟁점 토론회를 갖고 있다. 왼쪽부터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송정석 중앙대 교수,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이영 한양대 교수,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
재정의 재배분과 절약을 통한 찜통교실 해결
창조성을 가진 인간이 근본자원인데, 학생들의 창의성이 찜통교실로 인해 개발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일단 서울시 교육청은 각종 혁신학교 지원 등과 같은 시급하지 않은 지출을 동결하고 학교운영비를 늘려주어서 찜통교실 사태가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운영비가 1% 삭감된 만큼 교사회의비, 출장비 등 절약할 부분들을 찾아 주기 바란다.
향후 학부모들이 직면한 선택
학부모들도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무상급식을 받는 대신 찜통교실을 견디게 할 것인지, 아니면 무상급식을 포기하고 냉난방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할 것인지. 둘 다 원한다면, 세금을 더 내는 수밖에 없다. 정부나 교육청은 자원을 창출해내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원래 ‘무상’교육복지는 우리의 세금이 들어가는 ‘세금’복지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학보모와 학생 등 교육수요자의 수요에 더 잘 부응하는 교육시스템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계 각지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는 교육바우처 시스템의 도입부터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맨왼쪽)이 패널로 참석해 포퓰리즘 교육재정정책으로 학생들의 학습환경이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교육은 시장에 맡겨두면 정말 과소 공급되는가?
사실 교육은 흔히 양의 외부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장에 교육서비스의 공급을 맡겨두면 최적 공급량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지는 서비스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부의 재정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는 의문이다. 양의 외부성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적절하게 공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로공사를 하면서 도로를 보호하고,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축대를 쌓고 망을 설치한다고 한다고 하자. 산 아래 사는 주민들도 양의 외부성의 효과를 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축대가 과소공급되지는 않을 것이다. 주민들로부터 양의 외부성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축대 쌓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도 가장 큰 수혜자는 자신이므로 자신의 교육으로 인해 다른 사람도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자신이 받을 교육서비스의 수준을 일부러 낮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무교육과 바우처 제도 도입의 필요성
물론 최소한 글을 읽을 줄 알아야 시민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또 그에게 요구되는 여러 의무들(교통규칙의 준수 등)을 잘 지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일정한 의무교육이 주장될 수 있고, 또 이를 위해 주민들이 세금을 부담할 용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최대한 소비자의 선택의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소위 교육서비스가 공기업에서의 문제인 소위 ‘철밥통’에 따른 비효율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을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해서, 소비자의 선택의 길마저 봉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이다. 정부가 재정을 제공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필요와 동떨어진 재화나 서비스가 공급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소비자의 선택의 범위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 방법의 하나가 교육바우처 제도의 본격적 도입이다. 교육소비자의 필요가 공급에 잘 반영될 수 있는 상위 시스템의 확보가 없이는 교육재정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만들기는 너무나 큰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한 아이를 기아와 영양 결핍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무지(無知)로부터 보호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그렇지만 아이가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서는 음식과 옷을 확보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어 지역단위의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 정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더 나아가 행정적 편의를 이유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급식소로 배정된다면,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 그러나 그와 같은 가상적 조치들이 음식이나 의류에 적용되면 매우 이상하게 비칠지 모르지만, 이는 바로 ... 국가 교육체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E. G. West, Education and the State, London, IEA, 1965, pp.13-4)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15일 주최한 <교육재정 올바로 쓰이고 있는가>라는 정책토론회에서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