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박근혜정부 당시 특정 문화계 인사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블랙리스트'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이와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상고심에서 직권남용 기준을 엄격히 제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앞서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등은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명 '블랙리스트'를 만들게 하고, 이를 집행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월 30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사진 좌측)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우측)의 상고심에서 직권남용 기준을 엄격히 제시했다./사진=연합뉴스
피고인은 김 전 실장 및 조 전 수석을 비롯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소영 전 문체비서관이다.
2018년 1월 항소심 선고 후 대법원 심리를 거쳐 2년 만에 다시 파기환송심을 결정한 대법원은 "이들이 관련 공무원들에게 특정 인사 지원 배제를 지시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한 것이 맞다"고 판단했으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은 이날 "직권남용 행위 상대방이 공무원이거나 법령에 따라 일정한 공적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공공기관의 임직원 등일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이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지 관계 법령에 따라 구체적으로 개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이러한 부분에 대해 원심의 심리가 미진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법은 "행정기관 의사결정과 집행은 서로 간 협조를 거쳐 이뤄지는 게 통상적"이라며 "이러한 관계에서 일방이 상대방 요청을 청취하고 협조하는 등의 행위를 법령상 의무 없는 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법은 "피고인들이 퇴임한 후에는 직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퇴임 후 이뤄진 범행은 공범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이같은 판단에 따라 퇴임 후 행위까지 포함해 함께 판단한 원심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못했다"며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7월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겨 1년 6개월간 심리해왔다.
이번 선고 결과는 최근 동일한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박근혜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이번 선고는 직권남용죄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이 세워진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 명확성 원칙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합헌' 의견을 내리면서, 소수의견을 통해 "공무원 직권은 내용과 범위가 법령 규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직권남용의 적용범위가 무한정 넓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