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국 외교관 A씨의 뉴질랜드 남성 직원 성추행 의혹이 한-뉴질랜드 정상통화에서까지 언급되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뉴질랜드 법원이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황에서 뉴질랜드 언론이 한국 외교부의 비협조 태도를 보도하면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씨가 받고 있는 의혹은 사무실과 대사관 엘리베이터 등에서 피해 직원의 엉덩이 등을 움켜쥐거나 만졌다는 것이다. 성추행이 일어나고 한달 뒤 A씨는 외교관 임기가 끝나 뉴질랜드를 떠났고, 피해 직원은 A씨가 떠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2019년 뉴질랜드 경찰이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올해 2월 A씨에 대한 뉴질랜드 수사 당국의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외교부가 이 사안을 인지한 것은 피해자 신고가 아니라 자체 감사를 통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 결과 A씨는 1개월 감봉 징계를 받았고, 이는 A씨의 주장이 대부분 수용된 것이다. 따라서 외교부는 A씨가 뉴질랜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을지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외교부는 지난 27일에도 “아직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점, 개인정보 보호 필요성 등을 감안해 현 단계에서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외교부 조사 과정에서 “성추행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A씨는 29일 뉴질랜드 온라인 매체 스터프 보도에서도 “나는 동성애자도 성도착자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나보다 힘센 백인 남자를 성적으로 추행할 수 있겠느냐”라며 여전히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 언론은 이 사건을 계속 다뤄왔고, 특히 지난주 뉴스허브라는 뉴질랜드 방송사의 탐사보도에서 한국정부가 성추행 외교관을 비호하고 있다고 집중 보도하면서 뉴질랜드 내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은 A씨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공개하면서 성추행은 최대 7년까지 징역을 받을 수 있는 범죄인데도 한국정부가 면책특권을 내세워서 인도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질랜드 방송(뉴스허브)이 지난 25일 심층 보도한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 /뉴스허브 캡처
이에 대해 외교부는 면책특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강력 부인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뉴질랜드 측의 입장에 대해 “수사 단계이고, (우리정부가) 협조를 해줬으면 하는 상태인 것 같다”면서도 ‘정부가 A씨를 비호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주재국에서 임기가 끝나면 면책특권은 적용되지 않고, 정부가 면책특권을 내세워서 특정인을 보호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28일 오후 전화통화를 요청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한 것은 그만큼 여론이 안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던 총리는 자국에서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이 사건을 살펴봐달라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문 대통령은 “관계부처가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30일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가고 있다”며 “정확한 사실확인이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외교부와 소통하고 있고, 수사에 협조할 용의는 과거부터 표시해왔고, 수사가 이뤄지도록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아던 총리는 통화에서 A씨에 대한 인도 요청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뉴질랜드 경찰도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직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자체 감사 때 성추행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감봉 1개월이라는 징계를 내린 이유도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아시아 지역의 다른 공관에서 근무 중인 A씨의 강제 소환 여부나 뉴질랜드 입국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뉴질랜드 수사기관 출두는 본인 의사로 해야 할 사안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뉴질랜드 한국대사관의 CCTV를 공개하고 공관 직원을 상대로 조사하는 것에 협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피해자인 뉴질랜드 직원이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추행 피해 진정을 한 것으로 전해져 그 결과도 주목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