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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 없는 통합조급증, 사회분열 키운다

2014-11-17 11:08 | 김규태 차장 | suslater53@gmail.com

이 시대 최고의 자유주의 입문서가 세상에 나왔다. 자유주의자 33인과 자유경제원이 세상을 보는 올바른 관점을 심어 줄 '나를 깨우는 33한 책'(도서출판 백년동안)을 출간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와 복거일 소설가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엮은 '나를 깨우는 33한 책' 1부에서는 자유주의와의 만남을, 2부에서는 바로 보는 대한민국 역사를, 3부에서는 자유주의 거울에 비친 세상을, 4부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번영을 이루었나를 소개한다. 미디어펜은 자유주의 전파의 일환으로 <나를 깨우는 33한 책>중 부별로 일부를 발췌하여 연재한다. 아래 글은 3부 ‘자유주의 거울에 비친 세상’에서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이 저술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통합,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 (송복 등 지음, 북오션 발행, 2013)를 읽고서

   
▲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통합을 외칠수록 분열되는 사회

용어는 정확한 정의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감성적 어감을 바탕으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용어가 판을 친다. ‘사회통합’이란 용어도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용어 중 하나이다. 일단 사회통합은 좋은 어감을 주므로, 누구든지 이 용어를 즐겨서 사용한다.

특히 모든 이념 진영에서 사회통합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애기한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통합을 애기할수록 우리 사회는 더 분열되고, 대립각도 더 날카로워진다. 자신은 통합을 원하지만, 다른 진영은 반통합 세력이므로 통합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판친다. 심지어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 종북인사들도 사회통합을 내걸고 정의사회를 부르짖는다. 통합이란 용어로 인해 우리 사회는 더 분열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소속으로 ‘사회통합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념, 소득, 지역, 세대 등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를 사회통합이란 틀 속에서 해결해 보려는 의지에서 출발하였다. 필자는 이때 대통령실 시민사회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사회통합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과정을 잘 보았다. 특이하게 느낀 점은 많은 사람들이 통합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이질적인 진영이 모여서, 서로 토론하면 통합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날카롭게 대립하는 좌우 진영을 섞어서 위원회를 구성하면 이념통합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널려 깔려 있었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10이란 숫자와 +10 이란 숫자를 합하면, 0이 된다는 논리로 통합을 보고 있었다. 두 진영의 극단적 인사를 모아서 토론하면, 둘 다 중립화된다는 논리였다. 어쩌면 이명박 정부 때 ‘중도실용’이란 전략이 나온 것도, 통합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 지난 9월 8일 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초이노믹스는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방안을 내세워 기업들의 투자위축과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뉴시스


사회통합은 대통령의 언어다.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통합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통합수준이 결정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조금 다른 용어를 사용했지만, 사회통합을 애기한다.

아마 미래의 모든 대통령도 사회통합을 애기할 것이다. 결국 정치의 궁극적 목표가 통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통합에 대해 감상적이고 즉흥적인 주장만 있을 뿐, 정교한 개념을 바탕으로 논지를 펴는 전문가는 극히 드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통합에는 ‘정체성’이 필요하다

한국의 원로 사회학자인 송복 교수께서 편집한 이 책자는 자유주의 시각에서 통합을 애기한다. 우선 짧은 에세이 형식이므로 읽고 이해하기가 쉽다. 아울러 경제학, 정치학, 철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논지를 폈으므로 종합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비록 여러 저자들이 집필하였지만,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자유주의적 통합’이다. 다양한 이념을 모두 합해서 뭔가를 만들겠다는 황당한 논리가 아니다. 그래서 시중에서 통용되는 논의와는 한참 달라서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논리의 정교함을 따라가면 그 혜안에 놀라게 된다.

우선 통합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통합에 앞서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함을 보여준다. 통합은 절대적 목표가 될 수 없다. 단순히 물리적 통합이 목표가 되면 사회의 정체성을 버리고 통합하면 된다. 대표적인 예로 통일을 들 수 있다. 우린 분단국가에 살면서 통일을 애기한다. ‘통일이 소원’이라고까지 노래한다. 통일 자체가 목표라면, 북한에 대한민국을 바치면 쉽게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자유주의 국가를 토대로 한 통일이지, 자유주의를 버리면서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다. 즉 통일의 정체성이 우선해야 한다. 통합도 마찬가지다. 통합의 기본 정체성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다. 이를 버리면 통합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합을 애기하면서 배제논리의 정당성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진영은 분명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 체제를 위해서 혁명적 사고로 살아가는 종북세력이 대한민국에 엄연히 존재한다. 이들 삶의 존재 목적은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는 것이므로, 절대 이들과는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이들에게까지 통합의 손짓을 보내게 되면, 우리 사회는 더 분열되고 혼란에 빠진다. 이들 세력은 통합에서 배제해야 한다. 배제해야 우리 사회는 통합될 수 있다. 그래서 국민 100%를 위한 통합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어느 사회에서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 사회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은 존재한다. 이들 반사회적 세력은 통합에서 배제해야 한다.

통합은 국민 모두를 위한 통합이 아니다. 그 사회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세력들 간에 사회의 정체성을 견고히 다지는 구심점으로 통합이 작동해야 한다. 국민 모두를 통합하는 데는 엄청난 경제적 비용이 따른다. 그래서 통합에도 최적수준이 존재한다.

통합수준이 높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적정한 수준이 존재한다. 이 적정 개념은 경제학에서 이 사용하지만, 원로 사회학자이신 송복 교수도 표현이 다를 뿐, 같은 논리를 보여준다. “통합의 본질은 적절한 균형이며, 적절한 불균형이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근간이 되는 통합

통합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면서 통합의 본질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예가 집단을 앞세우는 경우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집단으로 민족, 민중, 대중 등을 들 수 있다. 우린 민중, 민족이란 용어에 감상적으로 쉽게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집단을 앞세운 주장에 논리의 정교함을 바탕으로 한 인식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통합은 자유주의 관점이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집단의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뭉치는 행동에 반대한다. 집단이 우선하면 그 통합은 특정 집단을 위한 통합이 되어 통합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자유주의는 집단에 중립적이며, 집단에 앞서 개인의 가치를 가장 중요시 한다. 통합이란 용어가 가지는 어감 때문에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논리가 쉬워 보일 수 있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나를 깨우는 33한 책> 출판기념회 포스터.


통합의 정체성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다. 따라서 통합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 정책수단이라 해도 통합의 정체성인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면, 통합이란 이름을 통한 체제의 퇴보다. 우린 통합을 애기하면서, 통합의 정체성인 시장경제를 왜곡시킨다. 대표적인 예가 소득계층 간 통합을 애기할 때다.

경제적 강자와 약자 간의 통합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경제적 강자가 약자를 도와주면, 소득 계층 간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경제적 강자가 자발적으로 자선 및 기부행위를 펴면 전혀 문제가 없고 통합으로 가는 효과적인 길이다.

그러나 우린 정부가 강제적으로 소득계층 간 격차를 좁히려 한다. 경제적 강자에게 높은 세금으로 뺏고, 경제적 약자에게 무조건적 복지로 도우려고 한다. 기부와 세금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기부수준이 높으면 통합이 쉽게 이루어지지만 세금이 높으면 분열이 가속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세금과 복지로서 통합을 이루려는 정책노력이 정치권과 관료들 사이에 팽배하다.

빼앗아서 도와주는 정책으로는 통합을 절대 이룰 수 없다. 통합도 결국 경제문제이고, 잘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통합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번영해야지, 통합이란 이름으로 시장경제의 구조를 뒤틀어 놓으면 경제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

빼앗아서 도와주는 정책으로는 절대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 사회주의 과정을 보면, 항상 빼앗아서 도와주는 정책으로 대중들의 환심을 얻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국민들은 빈곤의 평등만을 가질 뿐이었다.

   
▲ 최근 떠올랐던 가장 첨예한 갈등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놓고 일어난 정부와 공무원노조와의 줄다리기이다. 사진은 9월 27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9.27 공적연금 복원을 위한 공노총 총력결의대회에서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공무원들이 공무원 권리주장과 공적연금 복원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단기적 정책으로 밀어 붙이는 통합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통합을 달성하려는 노력에도 신중함을 요구한다. 대통령 소속으로 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의 권력으로 정책을 만들어 밀어붙이면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조급증이 발동할 수 있다. 통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권력으로 통합을 밀어붙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통합은 절대 몇 가지 정책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쉬운 정책으로 추진할수록 통합은 멀어진다.

통합은 단기적인 정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신뢰, 제도에 대한 신뢰, 소수계층에 대한 관용성 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통합은 시장경제처럼 ‘자생적 질서’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통합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단기적 정책수단을 통해 정치 공학적으로 달성하려는 사고로는 절대 자생적 질서 측면의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통합에서 더 멀어질 뿐이다.

통합처럼 애기하기 쉬운 용어가 없지만, 통합처럼 확실한 논리를 가지지 않으면 왜곡되기 쉬운 용어도 없다. 개인보다 집단에 가치를 두는 집단주의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반체제 인사들은 통합을 애기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애기하는 통합에는 미움이 있고, 분열이 있고, 싸움이 있다. 그들이 얘기하는 통합은 통합이 아니다. 진정한 차원의 통합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자는 최소한의 시간투자를 통해 통합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어감이 좋은 용어일수록, 그 용어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과 주장을 준비해야 한다. 좌파들은 항상 좋은 어감의 용어들만 사용하여 대중의 인식구조를 마비시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사회에 눈뜨기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접근하는 용어는 부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아름다운 용어일수록 가시를 조심해야 한다.

장미 가시는 순간적 고통만을 줄 뿐이지만, 그들의 가시는 한 젊은이의 인생을 망칠수도 있다. 이 책자는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대중 영합적 선동가들로부터의 예방주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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