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새벽 화상으로 열린 유엔 총회 연설에서 남북과 중국, 일본, 몽골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창설을 제안하고, 우선적으로 남북 간 ‘종전선언’을 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과 태풍 등 재난‧재해를 대응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협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맞아 평소 소신인 다자적 안전보장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동시에 다른 나라와 협력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유독 남북한만 꽉 막혀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공개적으로 국제사회에 환기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 간, 북미 간 대화가 단절되고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을 꺼내자 일각에서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윤희석 대변인 논평을 내고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 종전선언이란 카드가 얼마나 유용한지에 대해 의문이 많다. 북한은 우리 GP에 총격을 가했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며 “비핵화보다 확실한 종전선언은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북한이나 미국도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2018년 9월 리용호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더 이상 종전선언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지금까지 종전선언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3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은 연설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체제를 여는 문이라고 표현했다”며 “종전선언은 2018년 판문점선언, 1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사항이기도 하다. 정부는 종전선언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서 역사적인 남북미 정상 회동을 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1‧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에 종전선언을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1차 때에는 미국이 반대했고, 2차 때에는 북한이 소극적이어서 추진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굳이 종전선언을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기한 이유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북미 모두에게 관심이 있는 소재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날 “종전선언 추진은 비핵화 재개의 입구로서 좋은 카드이며, ‘10월 서프라이즈’로서도 가능하다”며 “북한의 호응이 필요하므로 우리정부가 후속 대북 메시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북한에게 보내는 동북아의 포용적 국제협력으로의 초대장이다. 남북관계가 장기 조정 국면인 현재 동북아 협력이라는 큰 장을 세워 북한이 자연스럽게 동참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하지만 북한의 대남 단절 입장이 불변이고, 코로나 청정국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성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고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의 각국 정상급이 참여하는 ‘일반 토의’에서 10번째로 ‘포용성을 강화한 국제협력’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청와대
사실 문 대통령도 이번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포함시킬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안보실 차원의 토론도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금 이 시점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어떤 결말을 짓고 가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오는 11월 미 대선 이후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든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엔이라는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을 선명하게 공론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종전선언을 북미 협상의 결실로만 봐왔지만 유엔을 통해 남북 간 노력으로도 종전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언급해온 “북미 대화만 앞세우지 말고, 북미대화의 성공을 위해 남북협력을 더 강화해야겠다”는 발언을 실천한 것이기도 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인 2019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전쟁 불가, 상호 안전보장, 공동 번영이라는 3가지 원칙을 이번 연설에서 글로벌 플랫폼에 올려놓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에서 진화시켰다”고 평가하고, “종전선언은 전쟁 불가에서 진화된 것으로 유엔에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홍 실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맞춰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를 제안하고 두 정상이 만나 공감대를 형성한 뒤 중국을 통해 북한의 참여를 독려하고, 나머지 국가들과 협력 플랫폼 형성한다면 자연스럽게 남북 협력과 연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