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독립기구이자 정부정책을 조언하는 일본학술회의 위원에 대해 이례적으로 임명을 거부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총리에게 임명권이 있어도 임명거부권은 없다는 통설을 깬 전례없는 이번 사태로 스가 총리의 ‘강압 정치’ 본색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스가 총리의 측근인 국토교통성 출신 이즈미 히로토 총리보좌관 등 보좌진들의 강경 성향이 작용했고, 실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목표로 한 주변 세력 길들이기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스가 총리는 취임 이후 관저 기자회견을 사실상 단 한차례도 하지 않아 ‘불통’ 스타일도 드러내고 있다.
‘학자의 국회’로 불리는 일본학술회의는 2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이번에 절반에 해당하는 105명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스가 총리는 8일 최종 6명을 탈락시켰다. 탈락자에는 일본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인정에 반대한 오자와 류이치 교수나 마쓰미야 타카아키 교수,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에 비판적인 와다 마사노리 교수, 구 일본군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의 권위자 가토 요코 교수 등이 포함됐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통상 일본학술회의 측 추천을 받아 총리는 임명만 해왔지만 스가 총리는 고의적으로 임명을 거부했고, 이는 스가 총리가 자신의 정책이나 사상과 맞지 않는 인사는 제외시킨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이번 조치에 대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말했지만 학문의 자유를 위배한 위법 가능성이 이미 거론되고 있다”며 “일본에서는 각종 학술단체와 학자, 학생들이 정부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나타냈고, 총리관저 앞에서 반대시위까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호사카 교수는 “10월 26일부터 시작될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는 단연 화두가 될 것이고, 이에 대해 스가 총리가 애매한 답변을 할 경우 스가 정권에 대한 역풍이 심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스가 총리는 취임 이후 20여일이 지나도록 총리관저에서 단 한 번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아 비판이 일고 있다. 이번 일본학술회의 위원 임명 거부 논란이 일자 도쿄신문은 “스가 총리는 지난달 16일 취임 이후 공식 기자회견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며 “총리의 대 언론 소통 차단은 관방장관이 1일 2회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고 비판 보도를 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에서 총리는 관저를 나가고 들어갈 때 언론의 질문과 국회에서 야당 질문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면서 “특히 총리는 국회의 중심이므로 회의가 열릴 때마다 참석해야 하고, 각종 위원회에도 참석해 질문을 받는 것이 주된 업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가 총리는 이번 논란에 대한 언론의 지적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의 행동은 과감했지만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못하고 있으므로 이것 때문에 스가 정권이 단명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스가 총리는 취임 후 공개 기자회견을 하지 않아왔는데 일본학술회의 위원 임명 거부 논란 이후 총리 담당 기자들과 오전7시부터 2시간 정도 그가 좋아하는 팬케이크 가게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간담회에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두 매체가 반발 의사를 나타내며 참석하지 않은 일도 이례적인 경우였다고 호사카 교수는 설명했다.
스가 총리의 불통 논란은 그가 실제로 언변이 좋지 않아서 설명할 기회를 안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물밑 접촉 등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호사카 교수는 “총리직에 올라서까지 불통을 고집할 수 없다”며 “10월26일부터 12월까지 이어질 임시국회에서 스가 총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여러 파벌로 갈라진 자민당 내 여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다음 총리 선거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한달도 안된 스가 총리의 내치 스타일은 일방적이면서, 드러내지 않고, 소통을 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그가 ‘경제’와 ‘조화’를 내세우고 있는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과 함께 외교정책에서 유연성을 추구할지 지켜볼 일이다. 최근 한일 간 ‘기업인 왕래 재개’ 등의 긍정적인 소식도 들려오지만 스가 총리의 정책도 보좌진의 강경 노선으로 좌우될 땐 여차하면 한국과 '제2의 경제 전쟁'을 마주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