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을 막겠다며 이미 '위헌' 결정까지 받은 차벽을 동원한 정부의 모순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지난 3일 개천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광화문 광장과 서울시청 앞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간에서 다수의 집회는 물론이고 사전신고가 필요 없는 1인 시위와 소규모 기자회견까지 완전히 막았다.
집회 참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날 오전과 오후 내내 시청역과 종각역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모든 전철이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다.
3일에 이어 오는 9일 한글날도 휴일을 맞아 13개 단체가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대규모 집회(56건)을 예고하고 나섰다. 10인 이상 집회는 총 12개 단체 54건이다.
광화문 광장 주변 모든 도로를 차벽으로 둘러싼 모습이다./사진=서울지방경찰청 종합교통정보센터 CCTV 화면 캡처
이에 경찰은 10인 이상 모든 집회에 대해 금지 통고를 내렸다. 이를 풀기 위한 집행정지 요청이 있을 경우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가장 큰 관건은 집회 허용에 대한 법원 판단과 관계없이 오는 9일 정부가 또 차벽을 세울지 여부다. 차벽 설치는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정부는 지난 3일 90여개 소에 달할 정도로 검문검색을 강화해 시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이번에도 차벽을 세울 경우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을 넘어서 위헌적 조치라는 반발에 부딪힐 수도 있을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일 경찰은 오전 7시부터 광화문 광장 진입 자체를 봉쇄했다. 300여대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웠고 펜스를 둘러 시민들, 거주민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막았다. 지나가는 모든 차량을 검문하기 위해 검문소도 세웠다. 일부 경찰은 이날 차량에 탑승한 시민들에게 태극기 소지 여부를 묻기도 했다.
이날 이러한 강력한 조치로 인해 광화문 광장 모든 도로에 차벽이 둘러지고 개미 한마리 얼씬도 못하는 풍경이 연출됐다.
서울 도심에 차벽이 설치된 것은 지난 2015년 이후 5년 만이다. 이에 앞서 2011년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서울광장에 차벽을 설치해 행인 통행을 원천 봉쇄한 조치에 대해 위헌으로 판단했다.
법조계는 경찰의 차벽 설치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뿐더러 헌법재판소가 차벽 위헌 결정에서 지적한 '제한의 최소성'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본지 취재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범법자로 전제하고 광장을 원천봉쇄한 것은 과잉대응"이라며 "같은 논리라면 광화문 광장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10명 이상 모이는 전국 곳곳의 수백만 곳의 거리를 봉쇄하고 차벽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화문 집회 참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10월 3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청역과 종각역에 대해 무정차 통과한다는 서울교통공사의 안내문이 불어 있다./사진=미디어펜
법무법인 신겸의 김이현 대표변호사 또한 본지 취재에 "차벽 설치를 비롯해 지나가는 모든 차량 모든 인원에 대한 검문 검색은 '목적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침해)의 최소성 모두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며 "경찰의 통행 제지 행위는 헌재가 결정한 대로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헌재는 지난 2011년 차벽 설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취할 '마지막' 수단"이라고 명시했다.
김 변호사는 "법리 뿐만 아니라 과학적,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며 "광화문 집회라고 해서 특별히 코로나 위험이 더 커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람이 얼마나 더 모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전국의 놀이동산과 공원, 강변 산책로, 시장 한가운데 광장 등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당장 경찰은 차벽 설치 논란에 대해 "특별방역기간이 일주일 남아있고 불법집회는 엄단한다는 기조, 불허한다는 기존 입장은 변함 없다"면서 9일 한글날 집회에도 세울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으로도 위헌 조치가 분명한 차벽 설치를 정부가 고수할지, 오는 9일 경찰이 자유로운 통행에 대한 기본권을 원활하게 보장하고 어느 정도 집회의 자유를 허용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