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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홈쇼핑채널 직접 운영이 창조경제?…"소도 웃을 일"

2014-12-10 11:0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황근 선문대교수
요즘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나름 인기 좋다는 언론학도 필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마이너 학과였다. 재학생 숫자도 적고 여학생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학교였다. 때문에 교내 체육대회나 과별 운동경기에서 별로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냥 ‘참가하는데 의미를 두는 올림픽 정신’에 투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출전 구호도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최소한 비기자! 지더라도 게기자!”였다.

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창조경제가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창조경제논리는 창의적인 개인이나 벤처, 중소기업들을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경제를 활성화시켜보자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창조경제 논리 바탕에는 ‘지금 돈 잘 벌고 잘 먹고 잘사는 기업이나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들’이고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착하고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이분법이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거명되거나 시행된 정책·규제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이른바 잘나가는 기업이나 사업자들을 규제하는 형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골목상권을 살려 창의적 소상인들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규제가 대형마트 영업제한 조치가 아니가 싶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규제들이 전혀 새롭거나 창조적이지 않은 구태의연한 규제들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전공분야로 들어가 보면 더욱 점입가경이다. 최근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유료방송 합산규제’ ‘제7신규 중소기업 전용 공영홈쇼핑 채널 추가 승인’들이 그렇다. 이 정책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이른바 잘나가는 사업자들의 발목을 잡자는 것이다.

유료방송합산규제는 요즘 고공행진하고 있는 kt IPTV를 견제하자는 것이고, 홈쇼핑추가 승인은 대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기존 홈쇼핑채널들의 독식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잘 나가는 놈은 나쁜 놈이거나 나쁜 짓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 '대형유통 농어민, 중소기업, 임대상인 생존 궐기대회'에 참석자들이 유통산업발전개정안에 반대하며 유통 및 입점되어 있는 농수산물과 상품을 내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조금 차이는 있지만 지상파방송에게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를 허용하겠다는 정책도 그동안 광고규제를 적게 받아 성장한 케이블TV를 비롯한 유료방송사업자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담고 있다. 실제 지금 광고시장을 급속히 점령해가는 것은 구글·유투브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인터넷사업자들인데도, 유료방송사업자들의 광고를 빼앗아 지상파방송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지상파방송사들이 집요하게 요구해왔던 광고총량제나 중간광고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놈은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전형적인 한국적 물귀신 의식이 창조적 규제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나온 규제들이 전혀 새롭거나 창조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유료방송합산규제처럼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을 규제하는 것은 알만한 나라들에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낡은 규제가 21세기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부활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한 홈쇼핑채널 역시 1995년 홈쇼핑채널이 처음 도입될 때부터 내세웠던 익숙한 구호다. 그렇지만 그런 명목으로 도입된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채널들 대부분이 대기업에게 매각되었다. 롯데 홈쇼핑이나 CJ오쇼핑이 그런 것들이다. 더구나 불과 3년 전에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인 홈&쇼핑 채널도 정부산하기관에게 추가 승인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정부가 중소기업 홈쇼핑채널을 직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규제수준을 넘어 통제인 것이다. 글쎄 지구상에 무슨 명목을 내걸었던 간에 정부가 직접 홈쇼핑채널을 하는 나라가 있는지 도대체 의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적폐로 인식되고 있는 낡은 공기업 논리가 버젓히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아니 대한민국의 관료들은 ‘창조’라는 이데올로기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창조라는 이름으로 전혀 창조적이지 못한 낡은 규제들은 다시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하긴 관료들에게 그나마 창조적인 분야는 규제를 만드는 것이니까. 한마디 ‘창조적이지 못한 창조 규제’인 셈이다. 결국 우리 기업들은 ‘시장에 나가서 싸우기보다 최소한 비겨보자’는 창조적이지 못한 창조 규제에 목을 매고 있는 것 같다. /황근 선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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