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은 지난 1년간 ‘정치실패’와 관련하여 총 13차례의 토론회를 진행했다. 자유경제원이 ‘정치실패’를 다루게 된 이유는 정치논리에 입각한 정부 정책과 국회 입법이 시장경제를 훼손하고 경제성장을 막는 현실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 때문이었다. 자유경제원은 정치실패 연속토론회를 정리하고, 대한민국 정치실패의 현주소와 해법을 찾는 <2014 정치실패 종합토론회>를 29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했다. 아래 글은 김행범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이다. |
1. 먼저 “정치실패”가 존재함을 인식시키자
시장 속 개인이나 정치 속의 개인이 “둘 다” 불완전하다. 나아가 시장 vs. 정치의 비교는 이 불완전한 두 가지 기제가 만들어내는 “시장실패 vs 정치실패”의 비교로 축약해 놓고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단계까지 오는 것만 해도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정치란 으레 시장에 대한 교정자(corrector) 및 처방(prescription)으로만 자처해 왔기 때문에 그 자신이 실패의 주체란 점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사인(私人)을 기소하는 사람으로만 알려 졌던 제주도의 한 고위 검사가 괴이한 죄목으로 기소 받음이 의외롭게 보이는 것과 같다. “정치실패”란 용어를 학문적으로, 대중적으로 더 익숙한 용어로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시장실패를 시장주의자·기업인·경제학자가 받아들이는 만큼이나 정치실패를 반시장주의자·정치인·정치학자가 받아들이고 있는가? 시장만큼이나 정치 기제 역시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바른 처방을 구하는 근본 사고의 출발점이 된다. 그렇다면 시장과 정치 중 우위 문제는 ‘나쁜 시장 vs 선한 정치’의 비교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덜 나쁜가?’의 관점으로 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 시각을 갖는 것이 우선 시급하다.
▲ 자유경제원이 10월 10일 개최한 토론회 '국정감사: 행정부 견제인가, 민간분야 길들이기인가'에서 김행범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국정감사도 감사받아야 한다'는 주제 발표문을 발표하고 있다. |
2. 정치실패는 대개 시장실패보다 더 악의적이다
그런 시각으로 한국 사회에서 쟁점이 되어 온 많은 경제 문제를 본다면, 거래비용 정보비용이 과중하며, 외부성, 공공재의 필요성 등이 분명 존재한다. 이기적 목적을 극대화하려는 시장 속 개인이란 결코 완벽한 계산자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이 현재와 같은 시장에 대한 정치 개입의 만연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하던가? 사실, 한국에서 야기된 시장실패의 많은 경우는 오히려 치료자로 자처하고 개입한 정치에 의해 야기된 것들이다. 권혁철 소장님의 예에서 든 지방 유령 공항들의 실패 사례가 바로 그러하다. 시장에서 주먹구구에만 의존하는 사업가라도 그런 타당성 없는 일에 절대 돈을 쓰지 않는다. 만약 그런 식의 실패를 야기한 경제인은 그 성과 및 시장에 의해 파산이라는 자연스러운 징책을 받는다.
그러나 무안의 ‘한화갑 공항’, 울진의 ‘김중권 공항’이란 실패를 야기한 주역들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처벌을 받음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지역구에 남의 세금들을 끌어온 선한 약탈자요 능력 있는 의원으로 칭송받는다. 시장 속의 기업가는 정보를 몰라 실패하지만 정치인은 정보를 알고도 이를 무시하거나 조작하여 실패를 뻔히 알고도 이를 자초하면서 이른바 공적 돈으로 표를 사는 것(buying votes by public money)이다. 후자가 도덕적으로 더 나쁨은 분명하다.
▲ 자유경제원이 12월 3일 개최한 <고든 털럭 교수의 학문세계와 한국에 주는 시사성> 고든 털럭 교수 추모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는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
3. 정치실패에 책임(정치 책임 및 법률적 책임)을 지우자
그렇다면 시장실패에 대비한 정치실패의 비극의 한 단초는 후자의 경우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기제 미비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정치실패의 책임을 지우는 기제가 필요하다.
(1) 먼저,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우자. 잘못된 입법의 주도적 발의 의원, 낭비적 정책 및 예산안을 가결한 의원, 계수조정위원회에서의 나쁜 로그롤링의 주역 등에 공개가 필요하다. 이것은 요즘 확대되고 있는 의원의 의정활동 평가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시도한 국회의원들의 시장친화도 연구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총괄적 평가를 더하여 정치실패의 상징적인 주요 정책별로 그 주도 정치인은 더 부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고한 미국의 윌리엄 프록시마이어 상원의원은 예산 낭비에 탁월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황금 모피(golden fleece) 상을 부여해 왔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밑빠진 독”상은 이를 본뜬 것인데 의정 평가를 근거로 이와 같은 실패적 사례를 공개 발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효과가 있다. 예산 중심의 평가를 넘어서, 예산을 수반 않더라도 국가 경제를 크게 저해하는 재분배적, 좌파적 정책결정 사례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규제 강화, 최저임금인상, 법인세 인상, 특혜 유지 등).
(2) 정치실패의 책임을 정치적으로만 지게해서는 무력하다. 의원 및 정당 활동의 정당성 여부가 때로 민형사적으로도 평가되어야 하는 것처럼, 정치 활동이라도 일정한 경우에는 민형사적 책임을 지게하자.
현행 국가재정법 제100조는 예산·기금의 불법지출에 대한 국민감시를 규정하고 있다.
① 국가의 예산 또는 기금을 집행하는 자, 재정지원을 받는 자, 각 중앙관서의 장(그 소속기관의 장을 포함한다) 또는 기금관리주체와 계약 그 밖의 거래를 하는 자가 법령을 위반함으로써 국가에 손해를 가하였음이 명백한 때에는 누구든지 집행에 책임 있는 중앙관서의 장 또는 기금관리주체에게 불법지출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시정요구를 받은 중앙관서의 장 또는 기금관리주체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처리결과를 시정요구를 한 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③ 중앙관서의 장 또는 기금관리주체는 제2항의 규정에 따른 처리결과에 따라 수입이 증대되거나 지출이 절약된 때에는 시정요구를 한 자에게 제49조의 규정에 따른 예산성과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산 및 기금의 “집행자”는 포함되지만 그러한 예산 및 기금의 “결정자”인 국회의원의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정치행위’라는 이름 하에서 이루어진 결정사안이라도 법안 및 예산결정에서 명백히 객관적 자료(타당성 조사보고서 등)를 오도하여 사업예산을 배정한 경우 등에는 이 역시 국민 감시의 대상에 포함하게 하며 일정한 징책을 받게 하는 법 개정이 바람직하다.
4. 이이제이(以夷制夷) - 정치인들로 하여금 다른 정치인의 정치실패를 통제하게 만들기
정치실패에 대한 또다른 처방은 정치인들에 대해 개인(시민)이 문제를 다 직접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정치인 vs. 정치인’의 대결로 구조화하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은 거부권을 좀 더 적극적으로 행사하여 그릇된 정치 과정에서 만들어진 포퓰리즘적 법안을 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산에 대해서도 “항목별 거부권”(line-item veto)제도를 인정하여 여야의 나쁜 로그롤링으로 통과된 특정한 부당 항목만을 골라 거부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할만하다. 그런 점에서는 행정부-의회의 긴장이 적은 의원내각제보다는 대통령제가 더 나을 것이다.
▲ 11월 새정치민주연합 친노계열 의원들 80여명이 신혼부부에게 1억원짜리 주택한채를 주자는 사탕발림 공약을 내놓았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실패의 사례이다. 홍종학 의원(맨 왼쪽)이 제안하고, 우윤근 원내대표, 문재인 의원(맨 오른쪽)등이 가세했다. 신혼부부 무상주택 공약에는 100조원의 국민세금이 소요된다. 이 공약은 너무하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아, 없던 일로 치부되었다. |
5. 관료실패도 주목하자
정치실패의 초점을 정치인, 그 중에서도 특히 국회의원 치중하다 행정부 관료에 의해 일어나되 국회의원의 경우보다 눈에 띄기 어려운 관료실패(failure of bureaucracy)를 간과하지 말자. 규제 없이는 자신의 할 일이 없어지는 기관, 공공기관을 산하에 증설하여 퇴임 후 일자리를 모색하는 행정부처가 야기하는 또 다른 실패들로 매우 중요하다.
재분배적 법안과는 별도로, 보건복지부 예산은 이른바 관료들의 점증주의에 의해 부지 중 꾸준히 증가하여 지금은 단일 부처로는 최대 예산을 주무르는 부처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아직도 우리의 국방예산이 가장 큰 항목이라고 오인하고 있다. 굳이 좌파 정권이 들어서지 않더라도 지금 추세라면 복지예산 은 관료의 통상적인 점증주의에 의해서라도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작은 정부 및 행정 개혁 또한 병행되어야 함이 이 때문이다.
6. 정치실패의 근본 처방은 현재 논의되는 “정치개혁” 조치들이 될 수 없다
정치실패를 정치인 개인의 부패나 도덕 문제로 이해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그러한 권한 오용 사례는 정치실패를 뚜렷이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지만 정치실패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강제력을 가진 국가권력 위에서 정치라는 집합적 결정이 갖는 구조적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정치개혁”이란 조치들이 흔히 주목하는 특권 포기, 비리에 대한 처벌 강화, 입법역량 제고, 윤리의식 고양 등의 조치는 본질적인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정치”란 기제에 의존하는 이상, 민주정치 역시 궁극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우정치의 현대적 버전인 표퓰리즘으로 진화되고, 투표자는 무관심한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민주 정치의 실제란 링컨이 말한 국민에 의한 정부(government by people)가 아니라 표(votes)를 수단으로 정치인이 권력을 잡으려는 치열한 경쟁일 뿐이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단의 집합적 결정 및 그 방식이 결국 실패(“정치 실패”)로 끝나지 않음이 오히려 기이한 것이다. 권혁철 소장님에 발제에서 시장에서 실패는 예외적인데 정치에서 실패란 항상적이란 지적에 완전 공감한다.
그렇다면 근본 처방은 정치를 잘하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정치에게 부여하는 자원배분 기회를 아예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로 되돌아온다. 진부하게 보이겠지만 다른 더 좋은 처방을 알지 못한다. /김행범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