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전세계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확대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같은 사업 분야임에도 두 회사가 받아들이는 압박감의 정도는 다르다는 평가다.
23일 전기·전자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집콕'이 유행하며 5G 관련 제품·통신망, 게임·IT 플랫폼 및 기기 등에 들어갈 반도체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21일 월드 IT쇼에서 "파운드리에 더 많이 투자 하겠다"고 언급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지만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 전경./사진=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31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D램이 22조5000억원, 낸드플래시가 7조5000억원으로 각각 70.6%, 23.4%로 메모리 반도체가 전체 매출의 94%를 이끌었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사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파운드리 사업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8인치 파운드리 공정을 중심으로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IC(DDI)와 전력 반도체 제품을 생산해낸다. 지난해 SK하이닉스시스템IC 매출액은 7030억원, 영업이익은 1179억원으로 집계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그나칩반도체 파운드리 사업부 인수에 투자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 사업에 힘을 주는 이유는 앞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하지만 지난해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에 10조3000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출한 만큼 당분간 대규모 파운드리 투자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동시에 조만간 모회사 SK텔레콤이 분할되며 SK하이닉스는 투자전문회사 아래에 놓일 것이기 때문에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투자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소재 삼성전자 공장 전경./사진=삼성전자 제공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파운드리 사업을 영위한다. 삼성전자는 전세계 파운드리 분야 1위 대만 TSMC에 이어 2위 사업자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30% 가량 차이가 나는 만큼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격차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팻 겔싱어 인텔 대표이사는 "당사 제품 포트폴리오 범위가 넓어 특정 기술·제품과 관련해 외부 파운드리 사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14nm(나노미터) 공정 기술을 보유한 삼성전자 텍사스 오스틴 공장이 인텔의 PC 메인보드 칩셋 물량을 수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삼성전자가 '숙적' TSMC를 따라잡을 추진력을 얻은 것으로 분석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화 약 20조원을 미국 반도체 공장 증설에 투자하기로 계획해왔고 올해 상반기 중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 후보지로는 오스틴, 뉴욕 버팔로, 애리조나 피닉스 등이 꼽히나 오스틴이 가장 유력하다는 평이다.
삼성전자에 있어 파운드리 증산은 국제 정치와도 면이 닿아있어 SK하이닉스외 달리 단순 사업 확장이 아니다. 지난 13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글로벌 반도체 칩 품귀 사태 대응에 관한 백악관 화상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 초대된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이 자리는 미국 정부가 한국·일본·대만 반도체 회사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내 반도체 증산을 목표로 열렸다는 전언이다. 이는 곧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반도체 패권 다툼에서 기업 길들이기 내지는 '줄 세우기'를 하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의지 표명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반도체 문제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쐐기를 박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현재 GM·포드 등 미국 자동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수익성 차원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 만큼 경영진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