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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자의 커튼콜] '킹키부츠' 강홍석① "즐길 준비 됐나요, 지구인 여러분"

2015-01-26 18:04 |

 4년 전 DJ DOC 노래를 엮어 만든 ‘스트릿 라이프’에서 처음 만났을 때, 강홍석은 한 마리의 야생동물 같았다. 흑인 못지않은 소울과 무대를 즐기는 안정감은 인상적이었으나 아직 연기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뮤지컬 ‘전국노래자랑’, ‘하이스쿨뮤지컬’, 연극 ‘광해’ 등을 거치는 동안 어느덧 그는 기어코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익혀내고야 말았다.

브로드웨이를 떠나 처음으로 공연되는 ‘킹키부츠’에서 강홍석은 드랙퀸 쇼의 스타에서 여장남자를 위한 부츠 디자이너로 변신하는 ‘롤라’를 연기하고 있다. “나는 구경당하는게 즐겁고, 당신은 구경 하는게 즐겁지 않냐”는 대사는 그의 연기 스타일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 ‘당신 마음껏 구경하라’는 듯 그는 웃고 울고 뛰며 무대를 100% 이상 즐긴다. “공연이 끝나도 에너지가 넘쳐흐르는데 어쩌냐”며….

   
▲ 뮤지컬 '킹키부츠' 공연장면 / 사진=CJ E&M

Q. 4년 만에 첫 주연이다. 그럼에도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어느 작품을 해도 마음은 똑같아요. 연습을 시작하면 오로지 작품만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첫 주연인데 부담이 없을 수는 없었죠. 옆에 (오)만석이 형이 앉아있는데 ‘내가 매번 듣고 보기만 했던 이 형이랑 더블캐스팅이야?’하면서 심장이 쿵쾅거리기도 했어요.

그날 저녁에 친구들을 불렀어요. 가볍게 술 한잔 하면서 걱정하니까 친구들이 “야 니가 만석이형이랑 더블캐스팅된건 좋은 일인데, 니가 형보다 잘하면 더 유명하고 잘나가야지. 그냥 네 모습대로 해”라고 하더군요. 차분히 돌아보니 저는 그저 ‘킹키부츠’의 롤라를 하고 싶었던 것 뿐이더라고요. 덕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어요.

Q. 롤라에는 왜 꽂혔나.

작년 2월에 (정)원영이 형에게 전화가 왔어요. ‘내가 노래를 들어봤는데 너랑 딱 어울리니까 빨리 검색해보라’고요.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다가 빌리포터(브로드웨이 롤라)가 부른 ‘섹스 인더 힐’에 순간 꽂혔죠. 10번을 넘게 돌려보는 동안 ‘오 이거 뭐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제 마신 술까지 확 깨버렸어요. 그와 동시에 “내가 이 역할을 안 하면 안될 것 같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자”는 생각도 들고요. 그 즉시 롤라만 보고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Q. 그럼 작년 한해는 롤라에만 빠져있었다는 말인데.

네. 이거는 안하면 숨을 못 쉴 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어요. 그래서 오디션에서도 남들보다 부족한 기술과 연기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롤라가 되어보자’라는 생각을 했죠. 의상, 분장 동생들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오디션장에서 ‘풋’ 대신 ‘헉’ 하는 반응을 이끌어냈던 것 같아요. 그 열정이 제대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사실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고 나서도 얼터네이트(Alternate)인줄 알았어요. 일주일에 1~2번만 무대에 서도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알고보니 만석이형과 더블캐스팅인거에요. 이건 제작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모험인 동시에 제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 뮤지컬 '킹키부츠' 공연장면 / 사진=CJ E&M

Q. 강홍석의 롤라는 브로드웨이 캐스팅인 ‘빌리 포터’와 유사하다.

캐릭터를 설정하기 전 외국 연출이 “홍석, 너는 여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여자를 흉내내지 말고 네 안에 있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달라”고 하셨어요. 제가 만든 캐릭터의 출발점은 여기였어요. 다른 작품의 여성화된 캐릭터와는 시작부터 많이 달랐죠.

Q. 오만석의 여성적인 롤라, 강홍석의 파워풀한 롤라를 보며 처음으로 ‘더블 캐스팅의 묘미’를 봤다.

사람이 너무 다르잖아요. 만석이형의 호흡, 캐릭터 분석을 보고 있으면 역시 ‘오만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늘 놀랍죠. 형이 밥먹을 때도, 연습할 때도 선생님처럼 의문을 던지세요.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며 ‘좋은 배우이자 선생님이구나’ 하는걸 느끼죠. 형은 늘 ‘너만의 방식을 찾으라’고 말씀하세요. 덕분에 형이 아름답고 섬세하다면, 저는 힘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는 캐릭터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Q. 작품 안으로 들어가보자. 롤라는 드랙퀸 댄서에서 시골 구두공장 디자이너로 변신한다.

디자이너라면 패셔너블한 롤라가 한번쯤은 꿈꿔보지 않았을까요? 20대 청년 하나가 몇 번 본적도 없는데 너무 열정적으로 다가와 자신을 도와달래요. 나는 대충 그림을 그려준 것뿐인데 예술적이라고 칭찬하고. 설렐 수밖에 없죠. 평소에 롤라 같은 여장남자에게 그렇게 열정적으로 레이저를 쏟아내는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Q. 디자이너 변신 첫날 남성 정장을 입고 나타나는 의미는.

극중 배경인 노스햄프턴이 시골은 시골이더라고요. 이태원에서 지내다 강원도로 가는 셈이죠. 롤라의 아버지는 항상 남들과 어울려 함께 호흡하며 살라고 말해요. 그래서 그도 첫 출근날 아버지의 말처럼 사람들과 어울려보려고 시도하는거죠. 물론 불안할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힘들었던 거고. 그래서 화장실로 숨어버리고, 찰리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게 된 것 같아요.

   
▲ 뮤지컬 '킹키부츠' 공연장면 / 사진=CJ E&M

Q. 그래서 등장한 메시지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말이다. 공장 내 불화를 해결하는 동시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포인트다.

이 말은 자칫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죠. 사장과 직원간 불화를 겪는 공장이 롤라의 메시지를 통해 화합을 이룬다는건 아주 중요해요. 모두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이해하고 힘을 합쳐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너무 좋잖아요. 또 롤라가 양로원을 찾아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버지와 화해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주기도 하고요.

Q. 찰리는 밀라노 패션쇼를 앞두고 일정이 꼬이자 롤라를 몰아세운다. 이후 연락도 안 받던 롤라가 밀라노에 깜짝 등장해 환상적인 쇼를 선사하는데.

롤라는 멋진 남자에요. 찰리의 말은 너무 화가 나고 힘들게 만들지만, 롤라에게는 하루만 지나면 일도 아니죠. 어차피 가려고 했어요. 이왕 도와줄 거라면 확실하게 돕자는거죠. 그래서 패션쇼 무대에서도 ‘내가 니 구질구질한 메시지 때문에 왔다고 착각하지마’라고 하잖아요.

또 패션쇼에서 대중을 향해 ‘지구인 여러분’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고리타분한 양반들에게 여장남자는 충격적이었을 텐데 이걸 또 유머로 푸는거죠. 그래서 롤라는 어느 누가 했어도 매력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하면 할수록 너무 멋있어 닮고 싶기도 하고,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엔돌핀 같은 존재라고도 생각해요.

Q. 다른 작품도 그랬지만, 특히 ‘킹키부츠’에서의 무대장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롤라와 같은 캐릭터를 언제 또 만나볼 수 있을까요. 또 언제 무대에서 이렇게 신나게 노래부르고 춤출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전 언제든 옆도 안보고 경주마처럼 달릴 수 있어요. 사실 이런 부류의 쇼뮤지컬이 국내에 자주 공연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매회 분장을 지우며 너무 아쉽죠. 내일 또 공연이 있는데도 말이죠.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신나고, 커튼콜에는 더 신나죠. 그래서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가 생겨요. 마지막에 쉽게 떠나보내지 못할까봐요. 정말 제 인생에 또 없을 만큼 마음껏 연기하고 노래 부르는 작품이라 누구보다 ‘킹키부츠’를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미디어펜=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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