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지난 5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네이버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과 관련, 고용노동당국이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자 네이버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사내 문화를 바꿔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27일 네이버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감독은 지난 5월 25일 네이버 직원 A씨의 극단적 선택이 직장 내 괴롭힘 탓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당국 조사는 지난달 9일부터 이달 23일까지 진행됐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 기간 중 네이버의 조직 문화 진단을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설문조사에는 임원급을 제외한 직원 4028명 중 1982명이 답변했다. 정부 공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동안 한 차례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는 응답 비율은 52.7%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과반 이상의 직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6개월 간 1주일에 1회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반복적으로 겪었다'는 응답 비율도 10.5%나 차지했다.
외부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상사가 팀 동료의 뺨을 때린 적이 있다는 제보도 있었다. 당시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조사한 외부 기관은 가해자를 면직시킬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네이버 사측은 정직 8개월 처분을 하는 데 지나지 않았고, 결국 피해자는 퇴사했다는 전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들의 괴롭힘에 대한 대처로는 '대부분 혼자 참는다'가 44.1%에 달했다. '상사나 회사 내 상담 부서에 호소한다'는 응답은 6.9%에 불과했다. 혼자 참는 이유로는 '대응해봤자 해결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9.9%나 됐다.
고용노동부는 폭언·폭행·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익명 설문조사도 동시 진행했다. 설문조사에는 1482명이 응답했다. 폭언·폭행에 관한 설문조사 참여자 중 본인이 피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8.8%, 동료의 피해를 보거나 들었다는 응답은 19.0%로 조사됐다. 직장 내 성희롱 설문조사에서는 본인이 피해를 경험했다는 응답과 동료의 피해를 보거나 들었다는 응답이 각각 3.8%, 7.5%로 나타났다.
당국은 "네이버는 조직 문화와 관련, 전반적인 개선이 긴요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상사가 '엎드려 뻗쳐'를 시켜 극단적 선택을 한 네이버 직원 A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사망한 근로자는 직속 상사로부터 계속적인 폭언과 모욕적 언행에 시달렸으며,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의도적으로 배제됐다"며 "과도한 업무 압박을 겪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임원급인 '책임 리더'라는 게 고용노동부 공식 설명이다. 당국은 A씨의 일기장과 같은 부서 동료의 진술 등을 근거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A씨를 포함한 직원 여러 명이 임원인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직장 내 괴롭힘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네이버는 사실 관계 조사 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조사하도록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감독 당국은 네이버의 직장 내 괴롭힘 처리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직속 상사의 모욕적 언행과 과도한 업무 부여, 연휴 중 업무 강요 사례가 신고됐음에도 네이버는 부실한 조사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고용노동부 입장이다.
심지어 네이버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소관 업무와 무관한 임시 부서로 배치하는 등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밖에도 네이버는 지난 3년간 전·현직 직원들에게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86억7000여만원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도 적발됐다. 임신 중인 노동자 12명에게 시간 외 근로를 시킨 사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국은 네이버의 노동법 위반 사항에 대해 검찰 송치와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한편 조직 문화 전반의 개선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김민석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네이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이자 많은 청년층이 선호하는 기업임에도 이번 특별감독에서 직장 내 괴롭힘 등과 관련해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다수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에 네이버 측은 "고인과 유가족들에게 재차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회사의 일원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임직원들에게도 상처를 남긴 것에 대해 큰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네이버는 "이번 특별근로감독 등을 계기로 그간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이 많았음을 알게 됐다"며 "성과 제고를 위한 독려가 괴롭힘이 되지 않도록 직원들의 어려움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체계들을 만들고 리더 채용과 선임 프로세스 점검·개선, 조직 건강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리더십 교육 등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바꿔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당사 경영진이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서도 조사 진행이나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포함한 당국의 여러 지적 사항에 대해서는 향후 예정된 조사 과정에서 성실하게 소명하겠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