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이면 수십, 수백편의 드라마가 순식간에 뜨고 진다. 연말쯤 돌아보면 그나마 서너편만 전체적인 줄거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또 2~3년 지나면 그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유행하는 말로 ‘인생 드라마’는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SBS 월화드라마 ‘펀치’는 충분히 인생드라마라 불릴 자격이 있는 작품이다. 방송사고로 인해 마무리가 약간 아쉬웠으나 시청자들이 되려 괜찮다고 응원할 만큼 반응도 절대적이다. 특히 방송사고로 인해 이태준(조재현)과 조강재(박혁권)이 법정에서 구형받는 장면이 통째로 사라지자 일부 팬은 “조강재가 항소한 이유는 자기 형량을 (방송사고로) 못들어서”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 SBS '펀치' 캡처 |
그만큼 드라마 한번 기막히게 잘 만들었다는 뜻이다. 죽음을 앞둔 덜 나쁜놈이 권력의 윗선에서 조롱하는 더 나쁜놈을 잡기 위해 남은 생을 거는 이야기는 매회, 매 시간 주도권을 이리 저리 옮기며 심장을 졸이게 만들었다. 지난날을 참회한 좋은놈 박정환(김래원), 나쁜놈 이태준, 알고보니 더 나쁜놈 윤지숙(최명길)의 기세 싸움은 단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진실을 밝히는건 어렵다. 상대가 권력자라면 더 어렵다. ‘펀치’는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검찰 내부에서도 핵심 인사들의 동맹과 배신, 계략을 빌어 현실사회의 비참함과 비인간적인 세태를 꼬집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무너졌을 때 이를 되찾으려 권력의 힘을 빌리려 한다. 작품은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도 분노해야 할 일인지 보여줬다.
세 인물은 끊임없이 상황과 증거를 조작했다. 때로는 없는 사실도 가공했다. 이 모두가 권력에서 양산되며, 이것이 무소불위의 힘을 쥐게 되면 인간을 최악으로 몰아붙인다는 것도 똑똑히 보여줬다. 자신이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사람일지라도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증거를 조작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신만이 고귀하고, 자신의 선택만이 옳았다. 결과는 모두 파멸로 이어질 뿐.
반면 승리한 박정환은 결국 이태준과 윤지숙의 몰락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는 뒤늦은 후회로 모든 것을 뒤엎으려 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자신이 구상한 그림이 완성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죽을 각오로 몰아붙여도 권력자들의 치부 하나 드러내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비유였을까.
▲ SBS '펀치' 캡처 |
박경수 작가는 ‘복수 시리즈’ 마지막편인 ‘펀치’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라고 말하는 듯 하다. 3포를 넘어 ‘다포(다 포기한)세대’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이제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박정환이 나타날 도리가 없으니, 만들어진 세상에서라도 위정자들의 맨얼굴을 드러내 한 대씩 때려주라고 드라마 제목도 ‘펀치’ 아닐까. 형에게 일러서 날 괴롭혔던 녀석을 흠씬 패준 것처럼 속은 시원한데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는 이따금씩 나쁜 박정환이 되며 자기합리화를 하지만, 착한 박정환이 될 생각은 해본적도 없거나 엄두도 못내는 소시민에 불과하니까. [미디어펜=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