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연속 이틀째 ‘김여정 담화’가 나오는 등 북한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문재인정부도 신중한 기류를 내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앞서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의 종전선언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매년 유엔 연설 때마다 종전선언 언급을 빼놓지 않았지만 올해 처음으로 국제무대에서 대상국들을 지목하며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4일과 25일 연달아 담화를 내고 ‘공정성’ 즉 이중 잣대와 ‘상호 존중’이라는 조건을 내걸어 종전선언은 물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여정 담화’는 남북관계 복원부터 시작하겠다며 대화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공정성’이란 모호한 말로 자신들의 태도를 정당화시키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특성을 갖는다. 즉 북한은 지금 대화와 도발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문재인정부의 태도 여하를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즉 임기 말 문재인정부의 다급함을 이용해서 소기의 성과를 얻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의 차기 정부를 대비하는 의도를 가졌다고 분석할 수 있다.
그동안 북핵 문제에서 한미 간 긴밀한 협의가 있어왔고, 북미대화를 견인해야 하는 한국정부 입장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남북협력을 위해선 대북제재 완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비핵화 협상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김여정 담화는 당초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요구했던 것에서 24일엔 ‘적대적 언동’, 25일엔 ‘공정성’(이중 기준)만 조건으로 언급했다. 이에 대해 북한이 관계복원 조건의 문턱을 낮춘 것으로만 평가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전문가 분석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8일 평양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이동하고 있다. 바로 앞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2018.9.18./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전문가 사이에선 김여정 담화에 긍정적인 문구들이 포함된 만큼 북한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국면을 놓치지 않고 적극 활용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활용해서 바이든 정부의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가늠하고, 미국 대북정책의 구체성과 심도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이 일차적으로 남북대화를 통해 종전선언을 구체화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면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반응을 보면서 유사 담화를 계속 발신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여정 담화는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유지해서 관계상 우위를 확고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여정 담화에서 ‘이중 잣대’ 주장은 군사력 균형 측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정당화하려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추가 실험을 위한 명분 쌓기를 시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특별한 반응없이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4일 뉴욕 외신기자클럽이 개최한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이미 여러번 밝혔듯이 미국은 북한에 적대적인 의사가 없으며, 북한과 전제조건없이 만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27일 김여정 담화와 관련해 우선 남북연락통신선 복원과 당국회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라디오인터뷰에서 “너무 반색하고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신중한 자세로 징검다리를 튼튼하게 하나씩 좋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자세가 결과적으로 빠른 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은 주말에 김여정 담화를 낸 이후 첫 월요일인 27일 오전 9시와 오후 4시 모두 남북연락사무소 통신선과 군 통신선 연결에 응답하지 않았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