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은 인생이다>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강신재 출판사 : 책읽는 수요일
▲ 전형구 전박사의 독서경영연구소장 |
인생은 순간이라는 조각이 모여 완성된다. 어느 순간은 한없이 기쁘고, 어느 순간은 온전히 잊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엄연히 내 인생이다. 그 기억의 파편들 중에 몇 개는 반짝반짝 빛나겠지만 모든 순간이 황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후에야 모든 날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디 오늘이 슬펐다고 좌절하는 이들이 없어야 될 것이다.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돛배 어부, 등대지기, 대장장이, 여인숙 주인, 다방 마담, 이발사, 뻥튀기 장수 등 정직하게 행복한 17인의 인생은 매일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길, 등굣길에 오르는 우리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거짓 없이 오늘을 긍정하고, 한 순간의 기쁨과 슬픔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고생과 어려움의 연속인 삶일지라도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사실이 별 일 없이 바쁘게만 사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다.
나는 그 신호가 희로애락의 조각이라 믿는다. 사람은 떠나고 없어도 그가 남긴 희로애락은 사소한 물건과 공간은 물론 나뭇잎, 흙, 바람, 햇볕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리고 오래도록 자생한다. 몸은 그 숨은 기운을 알아채는 것이다. 일상에 잠자는 지난날의 희로애락을 넓고 깊게 채집하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오래된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 ‘오래된 업(業)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난 이유다. - <오래된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에서
그는 비장해졌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일본 열도 대지진 소식이 흘러나온다. “사람이 자연한테는 몬 이깁니더. 자연을 건드리면 우리는 피해를 보게 돼 있지. 태풍이 부는 대로, 물이 담으면 담는 대로 자연을 따라가매 살아야지. 지구로 보믄 기생충 아인교. 지구를 갉아먹는 기생충. 사람들이 기생충 짓을 하는 한 재앙은 자꾸 일어날 깁니더.” - <내 몸엔 1억 4000년의 시간이 흐른다; 우포늪지기 주영학> 중에서
“사람이란 생각이 있시야 되는 거 아니여. 3만 원 갖군 어림도 읍써.” 돈을 내어놓으라는 그 성격 한번 어기차다. 결국 지갑을 열었다. 만 원짜리 일곱 장에 나는 그의 과거를 샀다. 만남의 끝물에 만난 그 쓴맛 또한 우리가 만나는 삶의 단편일까. 억센 일산과 맞닥뜨리고 사는 삶이 언제나 이타의 강요에 잡혀 흐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백마강을 떠나오는 걸음은 그렇게 질퍽했다. - <나는 당신의 세월을 유람합니다; 유람선 선장 송부헌> 중에서
눈은 나를 보고 있지만, 마담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안다. 중년 사내의 호기를 수없이 받아주었을 마담이 그와 눈을 맞추며 함께 웃는다. 웃음 속엔 상냥함과 친절을 수없이 게워낸 마담의 지난 시간이 있다. 에너지를 깊고 빠르게 닳아 없앤 상냥함, 우는 속으로 웃는 낯을 꾸밀 줄 알던 친절의 시간. - <노년은 커피 한 잔에 살아 있다; 다방 마담 이춘자> 중에서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하지만 두렵지 않다. 생전에는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가 쉽게 흩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든 여덟의 그를 매일같이 정류소로 이끄는 힘도 바로 이야기다. 그는 그 이야기로 가득한 정류소에서 오늘도 15시간을 난다. - <기다림을 기다리며 산다; 버스 정류소 소장 김영석> 중에서
그래서 공양주는 음식만 만드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묻고 확인받는 긴장까지 함께 생산하고 소비하는 곳이 공양간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수평선 같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 하잖아요. 밥하는 데서는 밥하는 사람이 돼야 하고, 밭일하는 데서는 밭일하는 사람이 돼야 하고, 분위기에 맞춰 살아야 하잖아. 절에 왔으니 스님에게 맞춰 생활을 해야 무리가 없어요.”
이어지는 그의 말은 모든 것을 갈무리하는 정답이다. “여기는 육체노동, 정신노동모두 필요로 하는 곳이에요. 그 두 가지가 같이 움직여야 해요.” - <밥상을 넘으니 마음이 천지를 노닌다; 공양간 공양주 김용순> 중에서
그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남 배려할 줄도 모르면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뇌 문, 머리 문이 폐쇄된 것 같아. 당뇨, 간암, 중풍으로 뇌세포 죽어가는 사람들 오면 못 해먹어. 대화가 안 될뿐더러 비위 맞추기가 힘들어서 속이 타. 그런 사람들은 이발하며 스트레스를 푼다니까.” - <경지에 오른 가윗날을 잊지 않는다; 이발사 이남열> 중에서
그의 마음만이 문제가 아니다. 혁필 환경은 늘 구슬프다. 제대로 된 예술로도, 한국의 전통문화로도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전통 회화 예술인은 콧방귀를 뀔 뿐이고, 민화에 몸담은 이조차 혁필을 ‘민화의 한 종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것이 저잣거리에서 생겨난 키치로 홀대받고 있지만 그는 할 말이 없다.
혁필은 이 시대와 자꾸 멀어지는데, 그는 다가오는 봄 위에 그것을 자꾸 앉히려 한다. 봄 마음으로 즐거운 그에게 나는 말한다. 인생에 봄을 거듭 피울 줄 아는 혁필은 금세 죽지 않는다고. 그러니 그 위에서 오랫동안 행복하라고. - <가장 낮게 활보하는 붓이 가장 높은 마음을 담는다; 혁필 화가 정홍주> 중에서
가장 슬픈 건 돌이킬 수 없는 옛날이다. 무뎌진 칼을 버리고 새 칼을 사는 습관, 연마제며 가정용 칼갈이 도구 따위가 흔해지면서 그 많던 칼갈이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옛날만 해도 김장철엔 골목길에 불 펴놓고 칼을 밤늦게까지 쌓아놓고 갈았어. 한 집 꺼 갈면 저 집에서 가지고 나오고 또 건너 집에서 가지고 나오고 ·····, 근데 요새는 좋은 칼도 많이 나오고 김장도 즈그 식구끼리 해먹고 그러니.” - <날도 갈고 나도 간다; 칼갈이 천종문> 중에서 /전형구 독서경영연구소장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자신이 지나온 자리에 아무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몸이 아닌 머리로만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시간은 빨리 흘러가버리고 어떤 시간은 고통스럽게 견뎌내야 할 때도 있었다. 아무도 그 견딤을 돕거나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통해 ‘견디는 힘’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몸의 일부로 만들어져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매일 아침 화덕에 불을 피우면서 몸과 마음을 바라본 후 작업을 시작하는 대장장이와 직접 갈은 칼과 가위로만 머리를 자르는 이발사의 장인 정신은 돈만 많이 벌면 당장 일을 관두고 싶다고 말하는 직업관 없는 세대를 반성하게 만든다. 그들은 ‘정직하게 보낸 하루’가 어제의 아픔을 잊게 하고, 내일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한 분야에서 10년을 일하면 전문가라고 한다. 20년을 하면 달인, 30년을 하면 장인 그리고 40년 이상을 하면 명장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된 17인은 달인의 경지를 넘어선 장인이요 명장들이다. 그들의 지나온 기나긴 세월은 그들이 주인공인 한 편의 드라마요, 영화이다. 이 책을 통해 오래된 것들과 함께하는 삶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정직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자세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